[청년실격] - Ep.01
"일이 많으면 야근을 해야 한다. 근데 일이 왜 많아질까?"
대부분 기획팀은 제안서만 작성하는 게 아니라 실무적으로 제각기 담당하는 파트가 있다.
당연히 성수기가 되면 이런 업무들이 '크루아상'처럼 겹겹이 중첩되고, 상황에 따라 야근이 불가피하게 발생하게 된다. 물론 세상에 있는 그 어떤 노동자가 야근을 하고 싶겠냐만은, 의무감이나 책임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나를 포함하여 그 어떤 직장 동료들도 잔업을 싫어해도 '회피하는' 직원은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내가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우리가 야근을 할 당위성을 회사가 충족해 주는가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야근의 요소를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보았다.
1. 보수가 명확한가?
2. 회사의 비전과 관련이 있는가?
3. 감정적으로 나를 설득했는가?
1. 보수가 명확한가?
바로 직전에 몸담았던 직장에서의 일이다.
① 이 회사는 '포괄임금제'로 근로 계약하여 고정 야근 시간과 수당이 있는 기업이다. 그러나 직원이 '10:00 pm'을 넘어 야근을 하면 근태기록을 강제로 종료하여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② '포괄임금제로' 고정 확보된 평일 야근 업무시간이 아닌, 무려 '주말'에 출근을 강요함에도 불구하고 '근로기준법'에 의거한 1.5~2배의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 (하루 추가 연차를 임의로 부여해 줄 뿐이다.)
③ 야간, 주말에 발생한 근태 기록을 고의로 말소시킨다.
④ 주 52시간이 넘은 근태 기록 또한 고의로 말소시킨다.
물론 직전에 몸담았던 직장의 근로 형태는 극심하게 기형적이고 불법적이라 지금 글을 적어내면서도 과연 누가 이걸 믿어줄까 의심이 들 정도이다. 그곳은 정상적으로 부의 흐름을 창출하는 '기업'이라기보다, 시대착오적인 '착취의 현장' 그 자체이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기형적인 고용 모델이 유지되는 비결은 간단하다. 바로 사회초년생들의 절박함과 무지를 파고드는 '포괄임금제'라는 마법의 단어 덕분이다. 보통 신입들은 자연스럽게 면접장과 계약서 앞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다. 고용 담당자의 "원래 업계 관행이 그렇다."라는 말 한마디면, 순진한 청년들은 말도 안 되는 독소조항으로 가득 찬 계약서에 덜컥 서명하게 된다.
포괄임금제를 최대로 악랄하게 활용하는 방법은 바로 '기본급을 최저연봉으로 지정'하고 '나머지 잔여 연봉을 모두 추가 연장근무 수당'으로 설정하는 방법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 예시를 들어보겠다.
[포괄임금제의 현실]
· 일반적인 연봉 3,000만 원
- 추가 · 주말근무 관련 사항이 근로계약서에 없다.
→ 야근과 주말근무를 하면 수당을 받을 수 있다.
· 포괄임금제를 악용하는 연봉 3,000만 원 설정법 (2026년 기준)
- 기본급 : 10,320원 (2026년 최저시급) * 209시간 = 2,156,880원
- 고정연장수당 : 10,320 * 1.5 * 15시간 = 232,200원 (주 3.5시간)
- 고정야간수당 : 5,160 * 21시간 = 108,360원 (주 4.8시간)
→ 야근을 하면 추가수당을 받을 수 없다.
이는 가상의 예시가 아니라 실제로 나를 포함하여 모든 직원의 근로계약서에 적혀있던 내용을 토대로 작성하였다. 파렴치하게 기본급을 법정 최저 한계선에 맞추고 1주마다 최소 8시간의 '무료 야근시간'을 버는 기업들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참고로 최저 임금을 기반으로 주 52시간을 꽉 채워 고용하려면 최소 약 3,678만 원의 연봉이 필요하다.
*기본급을 최저시급으로 잡았을 때 근로자가 불리한 점은 이후 다른 글에서 다뤄보겠다.
한술 더 떠, 최근 '코로나 버블 붕괴'와 경제 둔화로 인한 경영난을 핑계로 청년들의 인건비를 불법적으로 착취하며 근로기준법의 성역인 '주 52시간' 제도를 위반하는 기업들이 급증하고 있다. 오죽하면 "중견기업이 되어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기 시작한다."라는 '음지의 명언'이 정설처럼 굳어졌을까.
야근 시간 상한선 준수는 단순한 수당의 문제가 아니다. 화려한 쇼윈도 마케팅을 자랑하던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는 주 80시간의 살인적인 착취에 안타깝게 명을 달리 한 청년이 있었다. 더 살펴보면, 최근 5년간 과로로 추정되는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산업재해 사망 승인 건수는 약 1000건이 넘는다. 이처럼 '공짜 야근'은 단순히 '워라벨'의 문제를 넘어 바로 노동자의 '생명권'과 직결되어 있다.
애초에 포괄임금제는 근로 시간 측정이 어려운 영업직, 임원, 제조업과 같은 현장직들을 위해 고안되었다. 출퇴근 기록이 분 단위로 찍히는 일반적인 사무직에게 적용될 이유가 하등 없다.
그러나 "나쁜 것은 빨리 배운다."라고 했던가. 어느새 기업들은 하나둘씩 너 나 할 것 없이 포괄임금제를 도입하였고, 결국 작금의 '공짜 야근 공화국'과 대대적인 '저출산'으로 치달은 것이다.
청년들의 피와 땀을 쥐어짜고, 새로운 가정 형성의 기회를 가로막던 이 악질적인 주범이 마침내 올해 2026년을 기점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그나마 큰 위안이 된다. 그러나 이미 지나가 버린 청년들의 시간과 열정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포괄임금제가 있는 곳도 없는 곳도 모두 겪어보았다. 감정을 배제하고 실무자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 가장 큰 차이는 단순히 야간 수당의 여부가 아니라, 바로 '노동의 품질'이었다.
전자처럼 보장이 확실한 경우는 "월급이 복사가 된다고?"라는 밈을 외치며 눈에 불을 켜고 전력으로 업무에 임할 것이고, 반면 후자는 정당한 대가도 없는 주제에 야근이라는 필연적인 선고에 강력한 보상심리가 발동하여 정규 근무시간마저 해이하게 보내게 된다. 이는 결국 기업 입장에서도 생산성이 감소하는 '네거티브 섬 게임(Negative-sum game)'일뿐이다.
더욱 뼈아픈 사실은 수도권을 벗어난 지방의 고용 환경이 더욱 처참하다는 거다. 앞서 예시로 들은 나의 직전 직장처럼 주 52시간 준수는커녕 기본적인 근태 기록마저 조작하려는 기업이 수두룩하다.
사람을 품는 업(業)을 하면서도, 법이라는 최소한의 울타리조차 지키지 않는 경영자들이 늘어가는 현실이 그저 씁쓸하기만 하다.
2. 회사의 비전과 관련이 있는가?
회사의 비전이 개인의 자아실현과 일치할 때, 노동자는 기꺼이 자신을 착취한다. 열정은 모르핀이 되어 고통을 잊게 한다.
"90 Hours a Week and Loving It" (나는 주 90시간 업무를 사랑한다.)
1980년대 스티브 잡스 휘하 매킨토시 개발팀은 해당 문구가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고 사무실 책상 아래서 쪽잠을 잤다.
"위대한 작품(Vision)을 만들기 위해 개인의 희생(Crunch)은 불가피하다"
게임 업계에 널리 퍼져있는 암묵적인 명언(?)이다.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워크래프트'의 '블리자드'
'라스트 오브 어스'의 '너티독'
'GTA'의 '락스타 게임즈'
'위쳐'의 'CD 프로젝트 레드'
AAA급 명작 게임은 개발자들의 자발적인 크런치 없이 제작되기 어렵다.
"기업의 성장은 곧 나의 성장이다." 기성시대 선배들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이 명제는 과거 고도의 성장기와 우상향 하는 경제 지표 아래 견고한 노동시장이 뒷받침했을 때 유효했던 환상이다. 그러나 현재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IT 아웃소싱(SI)이나 프리랜서, 결과물이 명확히 보이는 디자이너라면 적어도 자신의 이름을 프로젝트에 선명히 기록하여 뚜렷하게 포트폴리오로 남길 수라도 있다. 그러나 조직의 톱니바퀴로 일하는 대다수의 실무자에게 회사의 '벌크업'은 결코 내 커리어의 '밸류업'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물론 제안서와 사업계획서를 쉴 새 없이 찍어내는 과정에서 나같이 하찮은 사업기획 부서의 기획자도 어느 정도 성장할 수 있다. 문장력과 슬라이드의 레이아웃의 퀄리티가 향상될 테니까. 기업이 업무를 세부적으로 분업화하고 무한한 반복의 쳇바퀴를 굴려 효율을 추구하는 생리도 머리로는 이해한다. 하지만 보유한 기업의 역량 대비 예비 타당성조차 검토되지 않은, 시작부터 결말이 뻔한 제안서를 억지로 써 내려가야 하는 순간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산전수전 겪은 굴러들어 온 경력직의 눈으로도, 업무가 숙달된 선임급의 시선에도, 이제 막 회사의 포트폴리오를 외우며 업무에 대한 기대로 '최애의 아이'처럼 밝게 빛나는 신입의 눈에도 '선정될 수 없는 사업'이라는 게 명확하다. 그런데도 위에서 무지성으로 "진행시켜"라 지시할 때의 그 참담한 기분은 실무자라면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까라면 까라." 도 선이 있는 법이다. 구시대적 지시 앞에서 동료들과 느끼는 감정은 성장의 기쁨도 고통스럽지만 착실히 쌓아가는 성장통도 아니다. 그저 나와 팀원의 시간이 허무하게 소모된다는 뼈아픈 무력감뿐이다.
기업이 비수기의 남는 레버리지를 활용하여 신사업을 발굴하거나 직원들의 역량을 기르기 위한 시도 자체를 비난하는 게 아니다. 다만, 정규프로젝트라는 폭풍우가 지나갔다면 시선을 외부가 아닌 내부로 돌려야 한다. 바로 완수한 프로젝트의 피드백으로 '건토', 요즘 표현으로 '건강한 토론'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전문 용어로 '정성 KPI'(나는 지금까지도 이 용어의 실효성에 의문을 가지고 있지만)는 이때 사용되는 말이다. 업무의 성과와 프로세스를 피드백하고 한 발 더 나아가 이번 과정에 발생한 다툼과 오해를 미리 해결하는 감정의 소화 시간이 필요하다. 가정에서도, 연인이나 친구사이에서도 묵혀둔 오해는 반드시 폭발하는 법이다. 아무리 업무적인 사회관계라지만 회사도 다를 바 없다.
결국 어디든 사람이 사는 곳이다.
3. 감정적으로 나를 설득했는가?
"내가 커버칠 힘이 없어서 미안하다. 오늘만 고생하고 내일 점심이라도 법카로 비싼 거 먹자."며 갓 테이크아웃해 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건네는 40대 직장 상사.
vs
"요즘 애들은 헝그리 정신이 없어. 나 때는 일 배우려고 일부러 남아서도 했어."라며 주문한 적 없는 라떼를 시전 하는 '40대 꼰대' 직장 상사.
이번 이야기는 순수하게 중간 관리자의 역량, '그릇'에 관한 이야기다. "어딜 가든 사수를 잘 만나야 한다."는 표현은 직장인들에게 불변의 진리다. 아무리 거지 같은 야근이라도, 나를 위로하며 이번 일이 끝났을 때 우리끼리의 조촐한 회식을 약속하는 따스한 상사가 있다면 우리는 또 바보처럼 밤을 버텨낸다. 결국 야근을 지탱하는 마지막 퍼즐 조각은 논리가 아닌 '감정'이다.
퇴사를 목전에 둔 어느 날 일이었다. 야근하기 직전의 저녁 식사 자리였다. C레벨과 나는 소위 말하는 '계급장 떼고' 한 판 붙었다. 안 그래도 상급자 본인의 '순수 무능'으로 발생한 잔업이었음에도 테이블에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눈치 없이 나에게 앞에 둔 쫄면을 가리키며 "니가 이거 비벼라", "수저 세팅이 왜 이러냐"라며 훈수를 두었다. 그렇지 않아도 직원들의 저하된 사기와 기분은 우리가 좌석한 테이블의 공기를 차갑게 가라앉히고 있었는데, 그 발언이 내게 결정적인 방아쇠가 되었다.
"말년 병장은 함부로 건드리는 게 아니다."란 속설을 망각한 대가는 그에게 너무나 컸다. 말 그대로 쌍욕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나는 다른 직원들의 몫까지 더해 응축된 울분을 즉석에서 프리스타일 랩을 하듯 큰 소리로 쏟아냈다. 그 순간만큼은 나 스스로가 '쇼미더머니' 참가자 부럽지 않았다. 애초에 우리가 야심한 밤에 가족, 친구, 연인과 따뜻한 저녁 시간을 함께하지 못하고 다시 차디찬 사무실로 돌아가야 하는 원흉이 누구인가? 그런데 당사자는 미안해하기는커녕 쫄면 따윌 비빌 손과 예절을 찾는다.
보잘것없는 직장 경력이지만 직급, 직책이 올라가며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 있다. 후임들에게 나가는 말은 조금이라도 더 예쁘게 부드럽게 다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나도 사람인지라 (항상 반성하는 부분이지만 나는 본래 타고난 기질이 굉장히 예민한 편이다.) 데드라인이 임박하거나 돌발 변수가 발생하면 그동안의 다짐이 무색하게 바로 날이 서는 모습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색하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하는 '척'은 한다.
내가 훌륭한 인격의 보유자 거나 종교적 수양 같은 대단한 동기 때문이 아니다. 리더의 부정적인 감정은 전염병처럼 사무실 전체로 번져 직원들의 사기를 꺾고, 필연적으로 생산성 저하로 이어진다. 이는 결국 실적이라는 성적표로 돌아오게 된다.
앞서 [2. 회사의 비전과 관련이 있는가?]에서 언급했지만, 논리가 머리를 납득시킨다면 사람 자체를 움직이는 건 결국 '감정'이다. 자신의 부정적인 기분을 태도로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것, 그것이 기꺼이 야근해 주는 부하 직원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프로의 자격이다.
마치며, 야근을 하지 않게 만드는 업무 환경의 중요성
고도화된 현대 업무 환경에서 프로세스 정립, 업무 시각화, NAS 및 클라우드를 활용한 아카이빙, 그리고 템플릿 구조화는 업무에서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나는 꼬일 대로 꼬인 커리어 덕분에 외국계 대기업부터 단 3명이서 시작한 스타트업까지 나름대로 산전수전을 다 겪어봤다. 그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당장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5인 미만의 영세 사업장이나 순수 현장 업무가 핵심 BM인 일부 특수 업종을 제외하고는 앞서 언급한 기본 업무 시스템은 반드시 갖춰야 한다. 의외로 시스템 구축에 드는 비용이나 진입 장벽으로 소모되는 시간이 그리 높은 편도 아니다. 의지만 있다면, 세팅이 완료되었을 때 얻을 수 있는 업무 레버리지 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나 직전에 몸담았던 회사는 체계가 없는 수준을 넘어, 체계를 만들려는 시도도 짓밟는 곳이었다. 효율을 위한 제안에 대한 C레벨의 답변은 "대표가 안 바꿔준다.", "옛날 방식대로 해도 매출이 어느 정도 나오는 회사인데"(하지만 현실은 날이 갈 수록 경영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라는 게으른 궤변뿐이었고, 오히려 업무에 적응할수록 증가하는 건 실적이 아니라 겹겹이 쌓이는 결재 라인의 증가, 끊임없이 증식되는 업무 메신저 톡방, 그리고 협업 부서와의 마찰뿐이었다.
결과는 너무나 명확했다. 무능한 C레벨과 시스템, 본사의 고인 물들에게 질린 지사의 유능한 직원들은 1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줄퇴사하였고, 해당 지사의 '분기 수주 실적이 단 1건'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 들게 되었다.
대부분의 중소기업, 특히 정부지원사업과 공개입찰에 기형적으로 의존하는 에이전시나 스타트업의 BM은 결국 '시간 싸움'이다. 한정된 인원으로 최대한 빠르고 많이, 그리고 정확하게 제안서를 제작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맹목적 투입 시간이 아니라 바로 '노동의 밀도'다. 정돈된 시스템은 이 퀄리티를 높여주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그럼에도 전쟁터에 출전할 때 군인에게 총도, 총알도, 심지어 칼 한 자루마저 보급하지 않고 "그냥 정신력으로 나가 싸워 이겨라"라고 등 떠밀고 자신의 의견만을 관철하려 한다면, 그것은 지휘관의 직무 유기다. 기업의 고유 콘텐츠도, 시스템적 역량도 하나 없이 직원에게 맨주먹으로 주먹구구식 양산만 바라면서 패배가 뻔하고 보상 없는 멍청한 전장에 우리가 기꺼이 야근이라는 검붉은 피를 흘려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