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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나 Pina Feb 08. 2021

완벽한 단 하나의 옷걸이


 거의 우리 부서 전용으로 쓰다시피 하는 작은 스탠드 행거가 생긴 이후로, 집에 있던 두꺼운 옷걸이를 하나씩 가져오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4개째가 되었다. 옷걸이를 기부하는 심정으로 시작했지만 어느샌가 회사에 옷걸이를 버리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둘 중 아무래도 상관은 없지만 내 옷장 한편에 저런 코트용 옷걸이가 계속해서 나오는 것을 보고 살짝 놀라고 말았다. 사지 않았는데 생긴 옷걸이가 이렇게나 많았고 내가 버리길 미뤘던 것들이 또한 많았던 것이다.



버리지 않고 가져온 정장용 옷걸이는 양심의 가책을 덜어주었다..!



 다 버리지 못한 옷걸이가 옷장 구석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것처럼 아직 내 마음에 들 완벽한 옷장 상태를 만들기는 마침표를 찍지 못한 것만 같다. 실은 지금 갖고 있는 옷걸이를 싹 버리고 새 옷걸이를 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단지 통일감이 없다는 이유로 멀쩡한 옷걸이를 싹 버리기에는 마음이 찜찜해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나의 산뜻한 기분을 위해 옷걸이 수십 개를 사는 것은 그만큼의 멀쩡한 옷걸이를 버리는 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니까. 이번에 회사에 기부한 우중충하고 두꺼운 아우터용 옷걸이는 다행히도 새로운 쓰임이 생겼지만 내가 쓰고 있는 나머지는 그저 나의 취향, 기준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줄곧 버리고 싶은 물건 1순위에 놓여있는 상황이다.



 정리 업계에 종사하든 그렇지 않든 옷장을 정리할 때 굳이 옷걸이에 신경 쓰는 이유는 분명 있다. 아무래도 통일된 컬러가 옷장을 더 정돈되어 보이게 할뿐더러, 같은 제품의 옷걸이라면 공간의 낭비 없이 일정한 간격으로 옷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내가 쓰고 있는(또한 써야 할) 옷걸이는 총 4종으로, 여름 티셔츠와 얇은 이너를 걸고 있는 세탁소 옷걸이, 적당한 두께감의 플라스틱 옷걸이, 어깨 한쪽을 튼 모양의 바지걸이와 아우터 전용 옷장 속 나무 옷걸이다. 이들 중 내가 교체하고 싶은 옷걸이는 약간의 두께감이 있는 플라스틱 옷걸이. 내가 산 것도 아니고, 집에서 독립하면서부터 흘러 들어왔는데 이 옷걸이가 가진 촌스러운 색색의 컬러 옷장을 열었을 때 기분을 가라앉게 하는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보라색도 있는데 옷이 걸려 있어 사진 못 찍음



 이렇게 옷걸이에 대한 긴 얘기를 하게 된 김에 내가 찾고 있는 옷걸이의 기준, 그러니까 좋은 옷걸이에 필요한 기준을 써보려고 한다.


 1. 너무 얇거나 두껍지 않은지: 누구나 알고 있듯 얇은 옷걸이라면 오래 걸고 난 뒤 어깨에 옷걸이 자국이 생기기 쉽다. 반대로 너무 두꺼운 옷걸이는 옷장의 공간을 많이 차지해 실용성이 떨어진다. 세탁소 옷걸이는 이미 개수를 유지하며 쓰고 있으니, 나머지의 옷들을 커버할 수 있는 적당한 두께감(0.5mm 내외)을 가진 옷걸이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2. 그레이, 혹은 화이트 사이 어딘가: 내 옷장 속 옷걸이의 가장 마음에 안 드는 부분, 플라스틱 옷걸이의 컬러감. 또한 지금 쓰고 있는 바지걸이와 잘 맞을 무채색의 옷걸이가 깔끔하고 고급지지 않을까 확신하고 있다.


 3. 내구성 있지만 무겁지 않은 소재: 무거운 옷에 무거운 옷걸이는 꺼내고 넣는데 부담을 주는 것이 사실. 이미 플라스틱은 쓰고 있으니 가벼운 스틸 소재 위주로 보고 있다.

                           

 4. 미끄러지지 않는 표면 재질: 요즘은 벨벳 소재가 아니더라도 논슬립 코팅이 잘 되어있는 옷걸이가 많아졌다. 몇 년 새 상당히 많아진 느낌인데, 다이소나 저렴한 오프라인 샵보다는 온라인에서 더 많은 종류를 볼 수 있었다.


 5. 민소매를 걸기 쉽게 홈이 있는지: 여름에 입는 민소매, 뷔스티에 스타일의 원피스도 걸 수 있을 만한 옷걸이라면 이들을 따로 접어 넣을 필요가 없으니 더욱 편할 것이다.



 가끔씩 얇은 옷걸이를 쓰면 니트나 가디건 혹은 무거운 맨투맨을 걸기엔 별로 아니냐며 물어오는 분이 있었는데, 옷걸이를 두 개씩 겹쳐서 쓰면 되니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옷장에 공간 여유가 조금 있는 편이라 니트를 반으로 한 번 접은 뒤 옷걸이를 감싸는 식으로 걸고 있기 때문에(구글에 ‘니트 옷걸이에 걸기’를 검색하면 과정 이미지가 나와요!)니트에 생길 주름은 신경 쓰지 않는 편.



 이렇게 좋은 옷걸이의 조건을 적어두긴 했지만 정리를 시작한 뒤 지금까지, 옷장을 정리할 때마다 번번이 마음을 고쳐먹고 '있는 것이나 잘 쓰자'는 마음이 이겼던 것이 사실. 혹시나 이번 봄엔 깔끔한 옷장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앞서 옷걸이를 찾아 나서는데 의욕을 발휘할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해 실패는 없어야 할 단 한 번의 구매. 혹 보시는 분들 중 쓰면서 만족스러웠던 옷걸이를 알고 계신다면 얼마든지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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