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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나 Pina Dec 09. 2020

수납 도구를 사는 일은 아무래도 천천히


 박스, 바스켓, 트레이 등등 도구들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옮겨가는 시점. 정리를 시작하며 맞게 된 위기라면 위기였다. 우연히 좋아 보이는 수납함을 발견하며 사기만 해도 저절로 정리가 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거나, 예쁜 것을 사면 공간이 더 예뻐질 거라는 생각으로 많은 시간을 수납용품 검색에 쓰기도 했다. 다행히도 내가 봐온 것들을 무턱대고 사들이지 않았지만 그 많은 플라스틱을 집에 들였다면 또한 죄책감에 얼마나 시달렸을지 생각하게 된다. 지금은 주변에 언제든 필요한 수납용품을 추천해 줄 수 있을 정도의 업데이트는 해두고 있지만 최대한 덜 사고, 있는 것을 잘 쓰자며 마음을 다잡고 있다.



 진행했던 수업이나 주변 지인들과 정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정리를 시작할 때 바로 도구 먼저 사라고 권하지 않는다. 정리를 시작했다면 앞으로 생활 공간을 정리하면서 물건을 줄이게 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 (물론 비용을 들여 정리서비스를 받게 될 경우 상황은 다를 것이다.) 수납 도구를 미리 한꺼번에 준비하게 되면 그만큼의 물건 개수가 늘어나는 것과 같고, 생겨버린 자리만큼 물건을 채워 넣으며 소비가 늘어나게 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굳이 선반 크기에 맞게, 물건을 넣을 수 있는 사이즈에 맞게 모두 준비할 필요는 없었다. 역시 한 번은 더 고민하시라고, 내가 수납함을 비롯한 정리수납 도구를 들이기로 마음먹었을 때 고심했던 것을 써봤다.



편집샵이나 쇼룸 같은 정리를 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1. 물건 덜어내기부터 시작하기


 모아둔 잡지를 꽂아두기 위해 파일박스를 구매하기 전이었다. 일단 모아둔 잡지와 책만큼 파일박스를 사는 건 비용 면에서도 무리가 있다고 판단해 스크랩을 먼저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내게 필요한 부분은 두꺼운 분량 중에서도 아주 일부였기 때문에 필요한 페이지들을 떼어내 파일에 끼우고 매거진 이름+어떤 월이었는지 메모한 포스트잇을 붙여두었다. 꽤나 효과가 좋았던 물건 줄이기였다.


 특히 조미료, 소스 통도 사고 싶던 정리 소품 1순위였는데, 고민 끝에 사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요리의 폭은 좁은 데다 나는 냉장고에 넣어 둔 마요네즈 한 통도 유통기한 안에 못 먹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후 리빙샵에서 낱개로 살 수 있는 작은 조미료 통을 발견하고는 필요한 개수만큼 사서 쓰고 있다.



2. 갖고 있는 물건 분류하기


 노트북 속 파일들을 정리하듯, 본격적인 정리를 하기 전 물건들을 쓰임 별로 공간에 배분하는 작업을 우선적으로 했다. 그러니까 그릇을 정리할 때에도 그것들을 놓아둘 상부장을 보면서 컵과 접시, 오목한 공기를 어떻게 배치할 지 위치를 먼저 잡았던 것. 그 다음 이 접시를 쌓아둘지, 아니면 꽂아서 둘지 정하고 필요한 도구들을 추렸다. 그 결과 브런치 접시를 접시꽂이 하나에 정리하고 나머지 그릇들은 쌓아서 보관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혼자 생활하고 그나마 양이 적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카테고리의 종류가 많아지는 주방 쪽, 그리고 화장품이나 소모품, 잡동사니 정리가 필요한 수납장에서 분류의 문제는 꽤나 오랜 시간 고민했던 부분이다.



3. 수납장, 선반 크기 재기


 본격적으로 수납함, 리빙박스들을 사기 전엔 그것들을 넣을 수납장과 선반의 규격을 재서 실제 쓸 수 있는 크기를 메모해 두었다. 한 칸의 서랍이나 선반에 수납함을 넣기로 결정했다면, 몇 개를 넣을 것인지, 서랍 공간의 높이보다 크지 않은 지를 따져서 혹시나 사고도 쓰지 못하는 일을 만들어서는 안됐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무척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사용하고 있는 선반을 샀던 해당 브랜드에서 수납함을 고르면 사이즈 문제에서 크게 걸리는 것이 없다는 것. 다시 말하면 내가 갖고 있는 이케아 선반에는 이케아 수납함 중에서 고르면 되는 거였다.



4. 반투명과 불투명의 선택


 조리대 주변과 화장품 정리에는 수납한 물건이 보일 수 있도록 반투명의 수납함을, 보이고 싶지 않은 물건을 넣은 경우 불투명의 수납함을 선택했다. 불투명한 수납함이 많이 나오지 않아 이름표를 따로 달지는 않았다.



5. 여유 공간 남기기


 물건이 추가될 경우 수납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을 남기는 것을 원칙으로 여유 있는 사이즈, 넉넉한 사이즈의 수납함은 구매하지 않았다. 사실 나에게 여유 공간이 있다고 해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둘 곳 없는 물건을 사는 일을 자제하게 되었다.



 이 거창한 과정 끝에 완성한 체계는 가구를 바꾼다면 다시 흔들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사를 가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이 수납함들 덕분에 가구를 바꾸는 것도 포기하고 있는데, 어찌 됐든 자원 낭비를 막고 있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점이 아닐까. 선순환을 실천하고 있다며 스스로 위로하지만, 공간 꾸미기 좋아하는 사람이라 가끔씩 슬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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