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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나 Pina Nov 03. 2020

잘 참았다 며칠 전의 나



 쇼핑도 해본 사람이 잘 한다고, 실패를 거쳐야 좋은 물건을 고르는 눈을 가질 수 있다지만 지금의 나는 물건을 들이기 전 이런저런 생각이 앞서는 소심한 사람이 맞다. 물건을 줄이기로 결심하면서부터 마음을 다잡은 것도 그렇지만 돈을 한 번 쓰는데 겹겹의 생각들이 끼어드는 탓이다. 예를 들어 쇼핑 앱에서 눈에 띄는 물건을 발견하게 됐다고 하자. 일단 내 머릿속에는 필요한 소비의 우선순위가 쭉 떠오르는데, 그들을 제치고 돈을 쓸 만큼 이게 갖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또 당장 급한 게 아니니까 좀 미루고 싶은 귀찮음도 결정을 유보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러니까, 나의 결정 장애는 어째 더 심해지고 말았다.



 시간이 갈수록 갖고 싶은 것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고 확신했지만 불쑥 튀어나오는 유혹은 참기 힘들 때가 많다. 실제로 써보면 어떨지 알 길이 없지만 이 정도 할인이면 그래도 도전해 볼 만하지 않을까 하는 식의 나름의 합리적(?) 판단을 내리거나, 사고 싶은 브랜드나 디자인의 조금 저렴한 버전을 발견할 때라든지. 그럴 때면 나는 이 ‘판단을 미루는 능력’을 발휘해 일단은 장바구니에 넣어 놓고 일정기간 기다려 보곤 한다.



 물건을 버릴 때 이런 망설임은 도움이 되질 않지만 덕분에 어느 때는 이런 결정장애가 조금 고마울 때도 있다. 그렇게 장바구니 뒤편에서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것들, 지금은 갖고 싶다는 생각도 크게 들지 않는 것들을 발견할 때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은 나와 같지 않다는 것을 잘 알아버렸다.



물건을 사는 것 외에 보관하는 것, 버리는 것까지 비용이 든다!



 같이 쇼핑을 다니다 보면 물건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니까 어떤 물건을 발견했을 때 정말 필요해서 사려고 한다기보다는 그것의 용도를 발견한 순간 억지로 생각해 낸다는 점인데 결국 구매로 이어지는 합리화의 과정이 재미난 경우가 많았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필요와 용도가 물건을 보는 순간 떠오르는 것이다.



 같이 소품을 구경할 때 어떤 예쁘고 적당한 가격의 유리병을 발견한 뒤의 반응. 물건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을 사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가격에 비해 괜찮다는 이유 하나로는 뭔가 부족한 것 같았다. 단순히 예쁘다는 이유로 사버리면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 있으니 이것을 사면 당장 무엇을 담는 용기로 쓸 거라는, 나중에는 실용성의 관점으로 그 물건을 보기 시작한다는 점이었다. 그때가 되면 말리는 입장에서도 조금은 어쩔 수 없는 마음이 되어 꼭 그렇게 쓸 거라면 사라고, 마지못해 허락하는 심정이 되어 버린다. 내 돈을 쓰는 것도 아닌데 뭔가 마음이 쓰리다. 물론 그런 합리화 없이 순수하게 ‘내 눈에 정말 예쁘니까!’라는 강력한 이유라면 어쩌지 못한다.



 나의 경우, 충동구매를 부르는 매력적인 물건을 갑자기 발견했을 때에도 결정 장애가 발동되고는 한다.

 “저거 사면 둘 자리는?”

 “더 좋은 게 있을 수도 있을 텐데, 더 싸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아니 꼭 저거 아니더라도 내가 더 빨리 사야 할 것들이 몇 개인데!”

등등 남들이 보면 굳이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나 싶은 각종 이유들이 소환되고 덕분에 번번이 카드값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이다.



 결정 장애에 대한 변명을 참 그럴듯하게, 길게도 썼다. 그래도 결제를 참아낸 나를 뿌듯해하는 순간은 앞으로도 꾸준히 즐기기로 했다. 나에겐 어차피 사야 하는 물건 리스트가 빼곡하게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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