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나 Pina Mar 01. 2021

준비한 용기로 음식 포장했던 소소한 실패들


 따릉이를 타고 퇴근을 해서 대여소에 바로 반납하지 않고 일단 그대로 타고 집으로 온다. 출입문 근처에는 전날 잘 씻어 말려둔 밀폐용기를 네트백에 담아 놓아두었는데, 들어오지 않고 그 백만 가져가 다시 따릉이를 탄다. 그렇게 생각해둔 저녁 메뉴를 파는 식당에 가서 주문과 함께 준비해온 용기들로 포장해 줄 것을 부탁한다. 음식이 준비되는 동안 따릉이를 대여소에 반납하고 준비된 음식을 집까지 걸어서 가져간다. 



 계획은 언뜻 완벽해 보였다. 그렇지만 집 근처 식당에 ‘준비한 용기로 테이크아웃 해오기’를 시도했던 초기엔, 이 일을 산뜻한 기분으로 완벽하게 해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러니까 나는, 그때의 실패했던 대표적인 케이스들을 끄집어 내려는 중이다. 부쩍 관심이 높아진 제로웨이스트라든지, 유행하는 용기내 챌린지 같은 것도 있으니 이러한 시도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나의 경우 큰 고민 없이 시작했던 이 일들이 예상보다 순탄치가 않았고 그 몇 가지를 써보려고 한다.



 1.샐러드의 실패: 선뜻 해주셨고 크게 실패라 할 것도 없지만, 초반이라 나의 센스가 부족해 조금은 맛없게(?) 먹었던 경험을 했다. 이전에 테이크아웃 했던 경험을 살려 샐러드에 도전했던 때였다. 넉넉한 밀폐용기를 드리며 주문한 연어 샐러드를 여기에 달라고, 소스는 그냥 그 위에 끼얹어주시면 된다며 부탁드렸다. 어렵지 않게 음식을 받아왔지만 문제는 포크를 들고 나서 발생했다. 드레싱을 콘과 양파만이 잔뜩 머금고 있었기 때문.


결국 작은 채소들은 너무 짜고, 덩어리가 큰 채소는 너무 싱거워 먹는 내내 이를 번갈아가며 먹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드레싱을 뿌리지 않고 찍어 먹거나, 먹는 중간 조금씩 나누어 붓는 사람이었던 걸 사 올 때는 잊었던 탓이다. 드레싱을 따로 담고 싶다면 당연히 작은 용기를 준비해야 했다. 



 2.마라탕의 실패: 양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던 경우다. 마라탕을 먹을 때 종종 갔던 곳으로, 500원의 포장비를 받는 집이었다. 사장님에게 포장비를 받아도 좋으니 준비해 온 용기에 담아달라 했고, 당연히 포장비는 받지 않고 허락하셔서 순조로운 줄만 알았다.


나름 넉넉한 크기의 밀폐용기를 준비했고, 무리하지 않게 적은 양을 담아 무게를 쟀지만 완성된 마라탕의 국물은 예상 밖의 양이었다. 가져간 용기를 채우는 것으로 모자라 국물은 봉지에 담겨야 했다. 게다가 바닥에 국물이 좀 묻은 것 같다며 네트백은 포기하고, 안겨주신 봉투에 음식을 담아야 하는 상황은 덤이었다. 국물이나 육수가 많은 음식을 가져올 땐 여분의 용기를 더 챙기고, 집에서 여분의 봉투도 더 준비해야겠다고 깨닫게 된 계기였다.




비닐봉지만 잔뜩 생기고 말았다..!



 3.치킨카레의 실패: 왜 안되는 것인지 딱히 이유를 알 수 없는 곳도 있다. 몇 번 방문해 식사했던 일본식 카레집으로, 인스타 맛집으로 알려져 있으며 웨이팅도 빈번한 곳. 여튼 그날은 카레를 사다 맥주 한잔하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밀폐용기 두 개를 챙겨갔다. 포장 손님에게도 작은 사이드 반찬을 주니 그건 받지 않을 생각이었다.


주문은 어렵지 않았다. 포장이 가능한 메뉴가 정해져 있었고 가져가려던 음식은 그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직원분에게 용기를 가져왔고 여기에 포장이 가능할지 물어봐 달라 했을 때 느낌이 썩 좋지 않더니 결국 듣게 된 대답은 ‘안된다’ 였다.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서비스하는 직원분이 나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눈치껏 봉투는 없이, 한 겹 덧씌우는 패키지는 생략하고 음식을 가져다주셨다.


바쁜 주방에 조금 귀찮은 일이 생긴 거라 여겼을 수도, 외부인의 식기를 들이는 것이 꺼려졌을 수도 있다. 이렇게 거절하는 곳이 생기면 직원을 곤란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바로 나의 요구를 접어야 한다. 







 이런 일들 외에도 해주기는 하지만 눈에 띄게 망설이거나, 귀찮아하는 표정이라든지 마땅찮은 기색이 느껴져 내적 좌절을 겪었던 일도 많다. 실컷 페달을 밟아가며 운동한 퇴근길, 배달시키지 않고도 저녁을 가져와 편히 먹을 수 있는 좋은 계획이라고 생각했지만 몸은 지치고 어딘가 편치 않은 기분으로 음식을 들고 올 때가 더 많았던 것.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져 안되면 어쩔 수 없다며 포기도 잘 하는 편이다. 특히 점점 노하우가 쌓여 새로운 곳을 뚫을 때는 배민의 리뷰를 확인해 구성에 맞춰 넉넉하게 용기를 준비하고, 식당이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미리 문의를 해보는 등 치밀함을 발휘하고 있다. 앞으로도 맛있는 것들을 먹기 위해 지난 실패에는 미련 두지 말고, 새로운 맛집을 개척하러 갈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완벽한 단 하나의 옷걸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