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나 Pina Oct 11. 2022

실눈 뜨는 퇴근길


 이제는 더 이상 풀숲으로 다이빙하거나, 가드레일 같은 펜스를 들이받을 뻔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퇴근길에 갖고 있는 유일한 불만을 서서히 떠나보내고 있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10월도 됐고 날로 차가워지는 기온 덕분에 눈을 제대로 뜨고 페달을 밟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눈 속으로 날벌레가 돌진해 부딪히는 상황은 생각보다 통증이 심해서 그때마다 짧은 비명과 함께 옆으로 처박힐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나는 퇴근길 자전거를 타다 벌레가 많은 구간에 돌입하면 차라리 실눈을 뜨며 자전거를 달리는 편을 택했다. 올해는 유독 초가을까지 중랑천에 벌레 떼들이 떠돌았는데 드디어, 이들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늘 그렇듯 지난달에도 꼬박 따릉이로 퇴근을 했는데, 문득 한 달 동안 내가 얼마나 탔는지가 궁금해졌다. 따릉이를 타는 일은 뭔가 당연한 일처럼 일상에 착 붙어있어서 미처 얼마나 타고 있는지 돌아볼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앱에 기록된 총거리 수를 찾아보니 이 기록을 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8월 31일부터 9월을 통틀어 나는 866분을 자전거를 타며 보냈고 156km를 넘는 거리를 달렸다. 38시간 26분. 그리고 탄소 저감을 36kg을 했다니 얼마나 많은 양인지 딱히 감을 잡을 수 없지만 그래도 좋은 일을 한 게 아닐까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아마 8월이나 그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바람을 가르며 페달을 밟는 일은 또한 회사에서 지내는 사이 떠오른 쓸데없는 잡념이나 스트레스를 떠나보내는 시간이기도 하다. 꽤 빠른 속도로 별 탈 없이 정해진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일이라 오롯이 앞을 보며 집중해야 하는 점도 좋다. 말로만 듣던 명상을 해본 적은 없지만 자전거를 타는 동안 머릿속은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다.


 퇴근은 따릉이로 한다는 단순한 원칙을 세웠고 나는 별일이 생기지 않는 한 그것을 수행하면 되었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 그 싫음을 극복하는 방법은 사실 생각을 깊게 하지 않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것에 딱 부합하는 경우였다. 하기로 했으니까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대여소의 따릉이 수를 체크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족히 5가지는 넘는, 각기 다른 버스로 출발하는 대중교통의 고만고만한 퇴근 방법을 깔끔하게 무시한 채로.





 모자를 쓰고 그마저도 대책이 안되어 실눈 뜨는 퇴근길을 달렸지만, 오늘은 머플러와 두터운 겉옷을 챙겨야 했다. 갑자기 쌀쌀해진 아침저녁 온도에 당황하고 말았던 것이다. 불과 며칠 사이 목을 감싸야 하는 퇴근길이 되었지만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이상 당분간은 계속 달릴 예정이고 여기에 별다른 이유는 없다. 지금의 회사에 얼마나 출퇴근을 반복할지 하루에 몇 번씩 혼란스러워도 오늘 퇴근길 페달을 밟을 내 모습이 명확하다는 점은 큰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6개월 동안 새 옷을 사지 않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