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 나는 일주일이 지나면 새 옷을 사지 않은지 7개월을 채우게 된다. 내 마지막 쇼핑 흔적을 살펴보면 한 쇼핑앱에서 1월 20일 아이보리색 숏패딩을 결제한 일이 있다. 7월 20일엔 6개월이 됐고, 오늘까지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곧 7개월을 앞두게 되었다. 얼마 전 여름 옷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새 옷 없이 6개월이 보내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조금만 참자고 생각했다. 그새 8월, 더위와 폭우가 번갈아 찾아왔다. 기후 위기를 실감하는 와중에 시즌오프가 끝났고 가을 시즌 신상이 깔렸다. 목표는 이미 달성했지만 일주일 후 7개월까지 채우면 나는 옷을 사고 싶을까. 잘 모르겠다.
사실 이 기간 동안 내가 옷을 아예 사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당근마켓에서 겨울 막바지에 롱코트를 샀고, 최근에도 역시 당근마켓에서 연습 때 입을 조거팬츠를 샀다. 동네에 새로 생긴 빈티지샵을 갔다가 니팅 스타일의 블라우스 상의를 샀다. 게다가 러닝화를 샀고, 속옷과 여름에 신을 풋커버를 샀다. 그러니까 내가 사지 않은 것은 철저히 새 옷에 해당한다. 7개월간 누가 입었던 옷이나 빈티지, 새로운 속옷과 신발 정도를 샀던 것이다.
처음에는 새 옷을 살 수 없다는 점이 커다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새 옷을 입고 외출하는 산뜻한 기분도 느끼지 못한 지 오래다. 일주일 전에 입었던 옷을 이번 주도, 다음 주도 입어야 한다는 사실에 옷장을 열 때마다 저절로 풀이 죽었다. 슬퍼해봐야 어쨌든 나는 새 옷을 안 사기로 결정해버린 사람이고 그걸 해내고 있는 중이었다. 억지로 시작했지만 자연스럽게 쇼핑이나 옷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적어도 한 달에 상하의 하나씩은 샀고 심심할 때 쇼핑앱을 들어가 보기도 했지만 적응이 되어 이제는 옷을 좀 안 사 입으면 큰일 나나 싶은, 이래저래 상관없다는 식의 마인드가 자리 잡게 되었다.
보통의 캠핑을 가지 않는 사람이 텐트에 욕심을 내거나 면허 없는 사람이 신차 소식에 동요하지 않듯, 점점 새 옷은 내가 사는 범주에 바깥으로 밀려났다. 길가에 핀 꽃을 보는 느낌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예뻐도 그걸 집에 꺾어 올 생각을 안 하게 되는 그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좀 필요하다 싶은 옷은 당근마켓에서 사기도 했는데 얼마나 합리적인 가격으로 샀는지는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옷을 대하는 모든 감각이 총체적으로 죽어버린 것 같다.
돌이켜보면 6개월간 새 옷이 필요한 순간은 많지 않았다. 옷을 지나치게 잘 입고 싶어 한다거나 내 모습을 인스타에 찍어 올리는 일이 거의 없고, 안 그래도 약속이 없는 평일 저녁은 운동으로 채워진 덕분이다. 올해까지 옷을 안 사고 버티느냐에 집중할 수도 있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졌다. 당장 좋아하는 편집샵의 온라인 사이트에서 시즌오프 상품을 살 수도, 가을이 되면 내 옷장 속에 있는 낡은 목폴라를 새것으로 바꿀 수도 있다. 다만 새 옷으로 기분을 달래는 것과 필요할 때 옷을 사는 태도는 확연히 다르다. 전보다 옷을 사는 일에 얽매이지 않고, 6개월의 기록을 만든 것으로 나의 시도는 절대로 헛된 일이 아니라고 믿는다.
*새 옷을 6개월 동안 사지 않겠다는 저의 결심은, 다큐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다큐의 풀버전을 볼 수 있는 링크를 가져왔습니다.
[ 환경스페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https://youtu.be/gw5PdqOiod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