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는 고체치약을 입에 넣는다. 이렇게 치약을 입에 집어넣으면 난 어쩔 수 없이 이를 닦아야 하고, 이를 닦은 김에 샤워를 하는 것이다. 저녁을 먹은 뒤 누워서 멍하니 폰을 쳐다보다 잠드는 일이 잦아진 이후 아무리 귀찮고 힘들어도 최소한 내 입에 고체치약을 넣는 일만은 하자는 규칙이 만들어졌다. 씻기 위한 이 최소한의 장치는, 습기에 약한 고체치약을 욕실 밖에 두다 우연히 생각해낸 방법이었다. 이외에도 어딘가 이상한 위치에 필요한 물건들을 놓고는 최소한의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물건의 위치를 정할 때 그것이 감에 의해- 놓여야 할 것 같은 곳 혹은 어쩌다 남는 공간에 두는 것이 과거의 나였다면, 조금 더 나아간 형태로 두 개 이상의 물건을 가지고 용도에 따라 묶었던 것이 전부였다. 카테고리를 만들어 테이프와 칼을 함께 두고, 충전 케이블은 콘센트 주변에 두는 것들. 그런 일반적인 방법이나 정리를 열심히 할 때 배운 것들을 꼭 지켜야만 하는 줄 알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또 하나의 방식이 추가되고 말았다. 어떤 물건을 둘때 습관을 1순위로 생각해게 된 것이다.
고체치약을 담아둔 상자가 침대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챙겨 먹는 비타민은 냉장고에 넣어둔다. 냉장고에 무엇이 있는지 자꾸 잊어버리는 내가 매일 냉장고를 살펴보기 위해 생각해냈다. 사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시도하는 방법이기도 한데, 운동을 꾸준히 하려는 사람들이 운동복을 출입문 근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거나 물 마시는 습관을 위해 물병 옆에 비타민을 놓는다는 것들이 '갓생'을 위한 비법처럼 전해오고 있기도 하다. 잘 사는 건 솔직히 모르겠고, 나에겐 그저 어떻게든 살아가려 만든 장치들만 가득해지고 말았다. 어째 완벽한 정리는 뒷전이 된 느낌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실은 한동안 어떤 정리도 하고 싶지 않은 심정으로 지내고 있었다. 또한 어떤 긴 글이든 쓸 수 없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해야 할 일이나 자잘한 이슈들이 끝없이 이어졌지만, 그다지 성과도 없었던 탓에 무슨 일이든 좀처럼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정리고 루틴이고 어지러워질 대로 어지러워진 나의 상태를 다시 되돌리기도 힘들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 봄 잊고 있던 한 가지가 문득 떠올랐다. 나는 주변 사람들, 혹은 이곳 브런치에서조차도 늘 정리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정리를 하고 있는 사람이며 이것은 풀어질 대로 풀어진 상태의 지금에야, 더욱 거스를 수 없는 사실처럼 느껴졌다. 어쨌든 정리했던 시간이 쌓이면서 그동안 내가 만들어 놓은 역할대로 행동하고 주변이 기대하는 것에 맞춰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한동안 롤에 충실했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며 일상을 통과하고 있지만 지금이 다시 시작해야 할 때라는 점은 명확해 보였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던 철저하게 스스로 지운 부담. 수없이 많은 것들을 미루기도, 회피하기도 잘하는 내가 이 부담을 언제까지 잘 이용할지에 따라 나 자신을 얼마나 다듬어나갈 지 결정될 터였다. 스스로를 챙길 수 있는 부담이라면 기꺼이 떠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다이어트를 하거나 금연을 결심한 사람이 주변에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듯 나는 언제나 스스로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얼마 전엔 씻기도 귀찮아하고 냉장고 속 음식을 썩히는 사람이었지만 집 주변을 뛰는 일부터 시작했다. 늘어나버린 체중도 원래대로 되돌렸다. 무엇보다도, 나는 노트북 앞에 다시 앉았다. 나는 달라진 계절에 걸맞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지금 쓰는 길어져버린 글로, 가능성을 찾아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