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술도가의 <라마 막걸리>
PINCH.POINT
대체 누가 이 둘을 엮어놓겠다고 생각했을까? 라마와 막걸리, 그리고 '내면의 평화'라는 조합.
그런데 이 엉뚱한 조합 속에서 전통주 브랜딩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모순적 메시지를 설득력으로 바꾸는 전략,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브랜딩의 '한 끗'을 파헤쳐보자.
이거 봐봐, 라마 막걸리래.
갤러리아 백화점 지하 1층, 함께한 남자친구가 급히 한 팝업 매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멀리서 봐도 킹받는(?) 라마의 미소가 눈에 띤다. 라마와 막걸리의 조화라..
도수가 가장 높은 라마 진 막걸리(9도)를 시음했다.
9도가 맞나 싶을 정도로 맑고 산미가 도는 편이라, 단술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반가운 친구였다.
호기심에 술병을 들어 찬찬히 보던 중 눈에 띈 단어가 있었다.
현재 부캐로 명상 지도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나에게, '내면의 평화'를 마케팅 요소로, 그것도 '술'에 접목했다는 사실은 시선을 잡아둘 수밖에 없었다.
그래, 파보자 라마 막걸리.
사실 우리 모두 안다. 술을 마시고 나서 찾아오는 건 대부분 '내면의 혼돈'이라는 걸.
다음날 지끈거리는 머리, 끅끅대는 속, 그리고 "어제 내가 뭐라고 했지?" 하는 후회.
하지만 라마 막걸리는 정반대를 약속한다:
NO HANGOVER, NO BURP, INNER PEACE
숙취가 없고, 더부룩함도 없는 부드럽고 깔끔한 막걸리를 강조하기 위한 후킹(hooking) 슬로건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내면의 평화의 로직은 단순 명쾌했다. 막걸리의 가장 큰 페인 포인트(Pain Point)를 정면 돌파한 것이다.
"막걸리 마시고 싶은데, 내일 아침이 걱정이야."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걱정 마, 우리 막걸리는 달라"라고 말하는 브랜딩. 과연 이 약속이 지켜질까?
라마 막걸리의 상세 페이지를 들여다보자면 이 브랜드가 가진 자산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1) "92년 밀양 술도가의 전통 제조기법"으로 만들어졌다 ⇨ 양조장의 헤리티지(Heritage) 부각
→ 지금 들어가 보면 96년이라고 되어있는 걸 보니 상세페이지 내용 업데이트가 안되었나 보다.
(2) "인공감미료를 넣지 않은 국산 100% 프리미엄 전통주" ⇨ 무(無) 아스파탐이 강조된 성분(Ingredient)
(3) 3번 걸러 걸쭉하지 않고 부드러운 삼양주 기법 ⇨ 차별화된 기술(Technique)
전통 양조장이 가진 모든 자산을 나열하면서도, 라마라는 현대적 캐릭터를 통해 젊은 감각을 더했다.
할아버지의 기술에 손자의 감각을 입힌 격이다.
브랜딩을 하다 보면 브랜드가 가진 자산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양조장 <밀양술도가>는 하나의 제품 라인에 캐릭터성까지 부여하며 힘을 줬다.
브랜딩을 하다 보면 캐릭터 선택만큼 중요한 결정도 드물다. 근데 왜 하필 라마였을까?
언제부턴가 라마 알파카 인형이 여기저기 보이면서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로 자리매김 한 이국적인 동물, 라마. 라마는 사실 성질이 더럽기로 유명하다.
화에 못 이겨서 등 위에 있는 모든 짐을 버려버리고 바닥에 벌러덩 눕는다던지, 긴 목을 이용하며 고개로 있는 힘껏 공격한다던지 등의 썰을 들었다.
그래서 메타(Meta)의 언어모델 이름도 라마(LLaMA)인 걸까?
아하! 여기서 스토리가 보인다.
마치 주사를 부리듯 주인에게 침도 뱉는 난봉꾼 라마에게도, 이 막걸리 한 잔이면 내면의 평화를 선사한다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 게다가 하얀 털을 가진 라마는 막걸리 색과의 매칭도 완벽하다.
이것이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치밀하게 계산된 브랜딩일까?
브랜딩의 결정적 순간
내가 이 막걸리에 주목하게 된 건 맛 때문만은 아니었다. 'INNER PEACE'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명상 지도 강사인 내게는 직업적 호기심을, 브랜드 컨설턴트인 내게는 전략적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술과 내면의 평화. 언뜻 모순처럼 보이는 이 조합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여기서 라마 막걸리의 진짜 전략이 보인다. 그들은 '술'을 파는 게 아니라 '경험'을 팔고 있었다.
숙취 없는 다음날, 더부룩하지 않은 속, 그리고 죄책감 없는 음주.
이것이야말로 현대인이 원하는 내면의 평화가 아닐까?
브랜딩에서 가장 위험한 건 메시지와 실제 경험 사이의 간극이다.
'내면의 평화'를 약속하고 정작 숙취는 그대로라면? 라마의 미소도 소용없을 것이다.
다행히 내 경험으로는(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약속이 어느 정도 지켜졌다.
실제로 라이트하고 깔끔했으니까. 하지만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통할지는 별개의 문제다.
브랜딩의 핵심은 약속이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전통주 시장의 새로운 가능성
라마 막걸리가 흥미로운 건 전통주 시장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기존 막걸리 브랜딩은 크게 두 갈래였다. 하나는 '전통의 맛'을 강조하는 것, 다른 하나는 '젊은 감각'을 내세우는 것. 라마 막걸리는 이 둘을 절묘하게 조합했다.
전통 양조장의 헤리티지는 유지하면서도,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경험을 약속한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면의 평화'라는 감정적 베네핏을 전면에 내세웠다.
술을 마시면서도 건강하고 싶고, 즐기면서도 후회하고 싶지 않은 현대인의 욕망을 정확히 짚어낸 것이다.
대망의(?) 시음노트
이쯤 돼서 나의 개인적인 시음노트와 안주리스트를 공유해 본다:
탄산은 적지만 청량감 있고, 라이트하고, 산미가 강해 페어링이 유연한 편.
성시경의 경탁주가 thick 한 요거트라면, 이건 light 한 요거트 느낌인데,
비교하자면 경탁주와 장수 막걸리의 중간이랄까.
도수치고는 굉장히 라이트하고 맑게 뽑힌 느낌이다.
The Art of Pinch Point
라마 막걸리는 분명 흥미로운 시도다.
전통주 시장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고, 현대인의 욕망을 정확히 포착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브랜딩을 만들어냈다.
다만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과연 이 브랜딩이 얼마나 '진정성' 있게 다가올까?
'내면의 평화'는 깊고 무거운 개념이다. 단순히 숙취가 없다고 해서 얻어지는 건 아니다. 그런데 이를 마케팅 메시지로만 활용한다면, 자칫 피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물론 라마라는 캐릭터를 통해 유머러스하게 접근한 건 좋은 전략이다. 하지만 '진짜 내면의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이 브랜드의 진정성의 척도는 시간이 지나 고객의 경험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아 진정성 있는 브랜드로 거듭나기를 바라길!)
임팩트 있는 메시지와 진정성 있는 소통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 그것이 바로 브랜딩의 '한 끗'이다.
P.S. 혹시 당신의 브랜드도 라마 막걸리처럼 대담한 약속을 하고 있다면?
PINCH.와 함께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결정적인 순간, 결정적인 한 끗을 위해서.
PINCH. Director K
Director K는 유연한 사고와 깊은 공감력으로 사람과 브랜드 사이의 미묘한 접점을 포착하고,
그 본질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스토리텔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