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국내 최초 백화점의 다음 100년은?
PINCH.POINT
아침부터 초밥 먹으러 백화점 오픈런
요즘같이 더운 날, 가장 쾌적한 피서지는 백화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핫한 곳은 단연 신세계 강남점의 ‘하우스오브신세계’.
평일 아침, 그중에서도 요즘 가장 핫한 초밥 오마카세 ‘김수사’에 가기 위해 10시 30분 오픈 시간에 맞춰 도착했지만 이미 줄은 길게 늘어서 있었다. 대기등록을 하고 한 시간을 기다려서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신세계는 무슨 생각으로 이 공간을 만든 걸까?
신세계는 최근 1년간 강남점 지하 1층을 전면 리뉴얼하며 연속적인 공간 실험을 시도해왔다. 인터뷰에 따르면, 100년 이상 지속되는 푸드홀을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2024년 2월: 여성 타깃 베이커리&디저트 셀렉션 공간 ‘스위트파크’ 오픈
2024년 6월: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공간 ‘하우스오브신세계’ 오픈
2025년 2월: 프리미엄 식품관 ‘신세계마켓’ 추가 오픈
스위트파크는 도저히 한 공간에서 볼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못한 국내외 유명 빵집, 디저트 브랜드를 집대성했다. '디저트계의 어벤져스' 라고. 신세계마켓은 VIP를 위한 식품관이자 트러플, 캐비어, 산지 식재료, 맞춤 반찬까지 아우르는 고급 F&B 편집샵에 가깝다.
그 모든 것의 입구이자, JW Marriot 호텔과 파미에스테이션, 신세계 백화점을 잇는 자리에 위치한 ‘하우스오브신세계’는 단순한 식음이나 쇼핑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다, 신세계다움의 정점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총 3개 층(지하 1층~지상 2층)으로 구성된 이 공간은 지하 1층의 고품격 푸드홀, 1층 와인셀라, 2층 럭셔리 편집숍 및 VIP 쇼퍼룸까지 ‘집’이라는 감각적 주제 아래 리테일 경험을 재구성했다.
푸드홀은 호텔 칵테일 바와 오마카세에서 영감 받은 카운터 다이닝과 프라이빗 룸 구성, 섬세하게 조절된 조도, 간단한 주류를 곁들일 수 있는 메뉴와 밤 10시까지 운영되는 ‘야간의 여유’로 기존 백화점 식음 공간의 한계를 넘는다.
하우스오브신세계가 큐레이션한 F&B, 패션, 라이프스타일까지 하나의 주제로 엮은 브랜드, 감도 높은 공간 설계, 전달하는 메시지까지 모두 일관되게 '신세계가 직접 큐레이션한 하나의 완성된 세계관' 처럼 보였다.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니라, 신세계가 스스로를 '브랜드로서 재정의'한 선언적 공간이라 해도 과하지 않다.
하우스오브신세계는 홍콩 기반 디자인 스튜디오 **AWOS (A Work of Substance)**가 설계했다. 호텔 JW Marriott와 백화점 사이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면서 식음, 주류, 패션, 리빙을 하나의 덩어리처럼 엮어냈다.
AWOS의 공간 설계는 명확하다. 공간의 카테고리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경험의 맥락으로 묶는 것.
덕분에 이곳은 백화점과 호텔, 쇼핑과 다이닝,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가볍게 넘나드는 특별한 ‘럭셔리 블럭’이 되었다.
하우스오브신세계는 단순한 ‘매장 기획’이 아닌, 신세계가 직접 만든 하우스 브랜드다.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는 우리 문화의 뿌리에서 나온 소재, 기술, 일상의 지혜를 연구하며 한국적 생활 방식과 아름다움을 탐구합니다.
전통이라는 날실과 현대라는 씨실을 엮고, 고객과 장인을 이어 그 속에 담긴 귀한 가치를 새로이 전합니다."
- '하우스오브신세계' 브랜드 소개글
이 브랜드 소개는 단순한 마케팅 문구가 아니다. 신세계는 이 공간을 통해 ‘한국 최초 백화점’이라는 헤리티지를 감도 있게 재해석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철학은, 최근 신세계 본점(명동점)에 새롭게 오픈한 ‘하우스오브신세계 – 더 헤리티지’로 이어진다.
이곳은 단순히 브랜드 셀렉션을 넘어서 우리 고유의 공예와 문화, 장인정신을 현대적 감각으로 해석한 공간이다. 전통이라는 날실과 현대라는 씨실을 엮는다는 'Weaving Heritage'라는 철학이 가장 밀도 있게 구현된 공간이기도 하다.
‘국내 최초 백화점’이라는 상징을 어떻게 공간에 녹여낼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응답은 강남보다 명동, ‘더 헤리티지’ 쪽에서 더 명확하게 느껴진다.
최근 오프라인 유통업계는 큰 전환기에 있다.
대형마트와 백화점의 쇠퇴, 그리고 명품의 온라인화는 모두에게 “왜 오프라인에 와야 하는가?”를 묻는다.
더현대 서울은 ‘쉼과 트렌드’로 해답을 제시했다. 팝업 브랜드, 넓은 휴식 공간, 체험 중심의 동선을 강화하며 도심 속 쉼터를 지향한다.
반면 신세계는 ‘헤리티지와 진정성’으로 응답한다. 단순히 보기 좋고 트렌디한 것이 아니라, 시간과 정성이 깃든 ‘귀한 것’을 큐레이션하는 것이 신세계가 말하는 새로운 럭셔리다.
지금 이 시대에 럭셔리는 무엇일까?
단순히 희소한 것, 고가의 것, 유명한 것이 아니라,
쉽게 흉내낼 수 없는 것. 시간이 만들어낸 가치.
신세계는 그 답을 ‘하우스오브신세계’ 브랜드로 구현했다.
그것은 단순한 판매처가 아닌 신세계 브랜드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는 플래그십 공간이다.
물론, 아쉬움도 분명 존재한다. 스위트파크–하우스오브신세계–신세계마켓으로 이어지는 공간 3부작은 물리적으로는 인접하지만, 브랜드 스토리나 고객 경험의 흐름이 하나의 서사로 설계되었다는 인상은 약하다. 특히 신세계 마켓은 의도가 조금 모호하다. 차별화된 고급 제품, 유럽풍의 인테리어, 고급 서비스.. 과연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한 것일까?
또한 하우스오브신세계 강남점에서는 브랜드 소개에서 강조한 ‘한국적 헤리티지’의 정서가 공간이나 브랜드 셀렉션 안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드러난다. 더헤리티지가 오픈하고서야 하우스오브신세계가 추구하는 바를 좀더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운영 측면에서의 완성도는 아직 실험의 단계에 가깝다.
브랜드의 격에 맞는 서비스, 고객 동선의 정돈, 혼잡도 관리 등 실제 경험의 질은 더 보완되어야 할 여지가 있다. 공간은 브랜드가 되었지만, 그 브랜드가 어떻게 경험되는가는 아직 조율 중이다.
브랜드는 완성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다시 짓는 것이다.
신세계는 헤리티지를 박물관처럼 전시하지 않는다.
그것을 감도의 언어로 해석하고, 공간이라는 감각으로 번역한다.
HOUSE OF SHINSEGAE는 백화점의 미래를 제시하지는 않지만, 신세계가 정의하는 가장 현대적인 럭셔리의 의미, 그리고 신세계만의 브랜드 정체성을 응축해 공간으로 구현하며 신세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내다보게 한다. 100년 뒤의 신세계가 기대되는 이유다.
브랜딩에 정답은 없다. 100년 역사를 가진 신세계조차 앞으로 100년을 내다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을 끊임없이 다듬고 있으니까.
브랜드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힘은 꾸준한 자기 성찰, 고객과의 진심 어린 소통, 그리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브랜드 에센스를 지켜내는 데 있다. 동시에 시대의 감도에 맞춰 본질은 지키되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는 것.
매출 3조의 신세계도 이런 고민을 멈추지 않는데, 작은 브랜드들이 흔들리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우리는 작은 만큼, 더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
PINCH. Director S
Director S는 냉정한 분석과 섬세한 감각으로 변화의 흐름 속 기회를 포착하고,
아이디어를 실행력 있는 전략으로 체계화하는 로드맵 메이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