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브랜딩 호텔의 대표주자, 포도호텔 방문기
PINCH.POINT
브랜딩에는 '완벽'이라는 게 있을까?
대부분의 브랜드는 어딘가 아쉬운 구석이 있다. 컨셉은 좋은데 실행이 아쉽거나, 디자인은 훌륭한데 경험이 따라주지 못하거나. 그런데 제주 포도호텔에서는 그런 아쉬움을 찾기 어려웠다. 건축부터 서비스, 심지어 작은 소품 하나까지. 모든 것이 하나의 일관된 철학으로 조율되어 있었다.
지난주 제주 휴가 차, 2001년 준공된 이타미 준의 완숙기 대표작인 포도호텔에 머물렀다. 사실 이곳은 2022년 Director S와 함께 제주 레지던스 프로젝트를 할 때 가이드로 들었던 곳이었지만, 이번에 실제로 숙박하며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건축을 전공하고 공간을 중점적으로 브랜딩하는 나에게 건축물부터 그 안에 들이찬 브랜드 경험까지 총체적으로 만족감을 선사한 포도호텔.
'닫기다, 잠재하다, 해방, 열다, 닫다, 혼재하다'는 이타미 준이 설계에 앞서, 당시 핀크스 기업 김홍주 회장의 첫인상에 집중하여 풀어나간 언어 표현이자 포도호텔의 기본 구상 개념이라고 한다.
'열림과 닫힘'. 이 메인 컨셉이 건물의 모든 요소에 스며들어 있었다.
하늘에서 바라보면 마치 한송이의 포도와 같아 포도호텔이라 이름이 붙은 이곳은, 제주의 초가집과 오름을 모티브로 설계되었다.
멀리서 보면 제주의 오름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에 순응하는 외관. 가까이 다가가면 포도알처럼 개별적으로 나뉜 26개 객실이 하나의 송이를 이루고 있다.
입구에서부터 이미 경험은 시작된다. 로비를 지나 객실에 들어서는 과정은 마을의 큰길에서 올레를 거쳐 마당을 지나 집으로 걸어 들어가는 경험으로 포개어진다.
복도를 걸으며 느끼는 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하나의 여정이었다. 점점 좁아지는 사다리꼴 형태의 복도, 천장 높이의 미묘한 변화, 중간중간 보이는 '틈'들이 만드는 시각적 리듬.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한국과 일본 창호 스타일의 콜라보였다. 위쪽은 한국 전통 방식, 아래쪽은 일본 전통 방식의 창살과 창호가 묘한 대비를 이룬다.
재일교포 이타미 준(한국명 유동룡)의 정체성이 건축 언어로 번역된 순간이었다. 두 문화의 경계에서 살아온 건축가의 내면이 물리적 공간으로 드러나는 것.
이런 디테일들은 설명을 듣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하나도 '그냥' 디자인된 것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포도호텔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유동룡미술관에 가면 더 깊게 그의 철학을 알 수 있다. 강력추천!)
포도호텔의 중심, 케스케이드(Cascade)이다.
열림과 닫힘 사이의 교차와 대비가 이곳에 이르러서는 와해를 이루며, 그 경계가 흐려진다.
호텔 중앙의 원통형 중정공간인 캐스케이드는 이 건물의 하이라이트다. 검은빛 돌로 층층이 마감한 낮은 계단으로 물이 잔잔하게 안과 밖을 향해 흐르고, 원통의 공간은 바깥 공기를 안쪽으로 들인다.
천장이 하늘을 향해 열려 있어, 계절과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빛이 공간의 표정을 만든다.
때에 따라 안개가 가득 차고 눈이 쌓인다는 이 공간에서, 나는 제주의 겨울 햇살이 만드는 빛의 조각배를 봤다.
객실 안에서도 '열림과 닫힘'은 계속된다. 테라스로 나가는 통창, 욕실로 향하는 두 개의 문, 심지어 가구 배치까지. 모든 요소가 같은 철학을 이야기한다.
이외에 인상깊은 경험 포인트들을 소개하자면,
전 객실에 국내 유일 아라고나이트 고온천수가 공급되어 각 객실에서 프라이빗한 온천욕이 가능하다. 300년 된 기소 히노키 욕조에서 즐기는 우윳빛 온천은 그 자체로 특별한 경험이었다.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올려다본 천장이 또 다른 감동이었다. 한옥의 서까래를 은유한 천장 구조와 체리 원목으로 구성된 실내가 만드는 따뜻한 분위기. 동행한 남자친구는 이 천장을 보고는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자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말 그랬다. 마치 거대한 나무가 우리를 보호해주는 듯한 포근함. 인공적인 천장이 아니라 자연이 만든 쉼터 같은 느낌이었다.
아침 조식도 마찬가지다. 정갈한 반상 차림의 포도 조찬은 계절을 담아 매일 바뀌는 국과 생선구이로 구성된다. 제주의 제철 식재료를 사용한 메뉴는 이 지역만의 특별함을 입으로 전달한다.
그런데 이 모든 요소들이 말하는 '하나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온전히 Director K만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 '하나의 줄기'를 공유해본다: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 본연의 자신을 회복하는 여정
포도송이 같은 외관은 자연에 순응하는 겸손함을, 올레길 같은 복도는 일상에서 자연으로의 여정을, 실외와 실내의 경계를 무너뜨린 캐스케이드는 자연과 만나는 정점의 순간을 이야기하는건 아닐까.
건축가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한국과 일본 창호의 조합은 두 문화가 공존하는 아름다움을, 서까래 천장은 나무 그늘 아래의 원시적 안식을, 아라고나이트 온천은 자연이 주는 치유말이다. 심지어 제주 제철 식재료로 만든 조식까지도 땅이 주는 자양분이라는 같은 맥락으로 해석해본다.
커다란 공간설계부터 작은 소품까지 신경쓴 섬세한 손길은 포도호텔 특유의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고 은근한 매력을 만든다.
포도호텔이 특별한 이유는 완벽함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모든 요소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다. 억지로 만든 컨셉이 아니라, 이 땅과 이 시간에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할 공간처럼 느껴진다. 마치 제주의 오름이 그 자리에 자연스럽게 솟아있는 것처럼.
브랜딩에서 말하는 '일관성'이 무엇인지를 이보다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드물다.
요즘 '웰브랜딩'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브랜드의 모든 터치포인트가 일관된 경험을 제공하는 것. 하지만 대부분은 표면적인 통일감에만 그친다.
포도호텔은 다르다. 철학이 먼저 있고, 그 철학이 공간으로, 서비스로, 경험으로 번역된다.
'열림과 닫힘'이라는 컨셉이 단순한 건축 개념에 머물지 않고, 브랜드 전체의 DNA가 된 것이다.
체크인부터 체크아웃까지, 심지어 호텔을 떠난 후에도 계속 기억에 남는 일관된 브랜드 경험. 이것이 진짜 웰브랜딩이다.
브랜딩 프로젝트를 하면서 자주 마주하는 질문이 있다. "어떻게 하면 모든 터치포인트가 일관된 경험을 줄 수 있을까?"
포도호텔에서 그 답을 봤다. 하나의 명확한 철학을 가지고, 그것을 모든 요소에 일관되게 적용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 철학이 진정성 있게 그 브랜드만의 것이어야 한다는 것.
포도호텔의 '열림과 닫힘'은 이타미 준이라는 건축가의 개인적 정체성에서 출발했다. 재일교포로서의 경계적 존재,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성찰. 이런 깊이 있는 철학이 있었기에 표면적 장식이 아닌 본질적 경험이 가능했던 것이다.
진짜 브랜딩은 꾸미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다. 포도호텔에서의 하루가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었다.
P.S. 혹시 당신의 브랜드도 포도호텔처럼 빈틈없는 경험을 만들고 싶다면? PINCH.와 함께 그 본질적 철학을 찾아보자. 결정적인 순간, 결정적인 한 끗을 위해서.
PINCH. Director K
Director K는 유연한 사고와 깊은 공감력으로 사람과 브랜드 사이의 미묘한 접점을 포착하고,
그 본질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스토리텔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