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데스티네이션이 되는 조건
PINCH.POINT
성수동에 착륙한 거대한 우주선을 나서며 문득 든 생각.
여기 또 올 것 같아?
공간의 지속적인 운영에 대해 항상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떠오른 질문이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 하우스 노웨어 서울은 애초에 '또 오는 곳'을 목표로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 공간은 "또 오고 싶은 곳"이어야 할까, 아니면 "한 번은 와봐야 하는 곳"이면 충분한 걸까?
*하우스 노웨어 서울에 대해 우선 알고 싶다면 아래 Director S.(이하 S) 글을 참고하길.
하우스 노웨어 서울의 성공을 일반적인 리테일 공간 기준으로 판단하면 안 됐다. 이곳은 글로벌 브랜드 데스티네이션을 목표로 설계된 공간이다.
혹자는 성수역에서 20분이나 걸어야 하는 위치가 부담스럽다고 하지만, 이건 단점이 아니라 전략적 선택이다.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쉽게 잊힌다. 하지만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곳은 특별함을 갖는다. 그리고 걸어가는 길에 핫플이 몰려있는 연무장길부터 고즈넉한 동네까지 거쳐가며 성수동 곳곳을 보게끔 한다. 역시 성수동 대표 랜드마크답다.
Director S와 방문한 날 각국에서 온 외국인 방문객 수가 상당했다. 이들에게 하우스 노웨어 서울은 "서울 여행 필수 코스"가 된 것이다.
젠틀몬스터는 이미 경험했다. 홍대, 신사, 도산공원 플래그십을 넘어서 두바이, 미국, 영국 등에서 어떻게 글로벌 '핫플레이스'가 되는지를. 이제 그 경험을 '성수동 사옥'이라는 새로운 무대에서 더 큰 스케일로 실험하고 있는 것이다.
- 한정성: 이런 공간은 세상에 하나뿐이다
- 화제성: SNS를 뜨겁게 달구는 포토스팟들
- 접근의 어려움: 쉽게 갈 수 없기에 더욱 특별한
"성수동까지 가서 봤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증명이 된다. 마치 뉴욕 구겐하임이나 런던 테이트를 다녀왔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런 전략에서는 재방문율보다 첫 방문의 임팩트가 훨씬 중요하다. 한 번 와서 강렬한 인상을 받고, 그것을 SNS에 공유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것. 그 과정에서 브랜드는 전 세계로 확산된다.
하지만 이런 전략에는 함정이 있다. 바로 '더 큰 임팩트'에 대한 끝없는 압박이다.
젠틀몬스터의 공간 진화를 되짚어보자. '세상을 놀라게 하라’는 젠틀몬스터의 브랜드 가치관처럼 분명 젠틀몬스터의 최초 쇼룸들은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방문자 입장에서는 점점 '익숙해지는' 패턴이 생길 수 있다. "아, 젠틀몬스터 또 큰 거 하나 만들었구나." 같은.
처음 도산 매장에서 메가 스케일 조형물을 봤을 때의 그 신선한 충격이, 이제는 하우스 노웨어 성수에서 보는 그 어떤 조형물도 '예상 가능한 서프라이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우스 노웨어 서울을 경험하며 느낀 미묘한 아쉬움도 여기에 있다.
분명 매층 각 브랜드를 압도적이고 인상적으로 소개했으며, S가 이전 포스팅에도 언급한 것처럼 같은 이야기를 공유하는 일관성도 존재했다. 하지만 한층 한층 오를 때마다 비슷한 (메가) 스케일 '작품' 배치와 화려한 제품들의 정갈한 진열이 반복됐다.
자극과 임팩트의 연속이 오히려 피로감을 줬다.
이건 비단 젠틀몬스터만의 문제가 아니다. 요즘 많은 오프라인 매장들이 공통적으로 마주하는 딜레마다. 성수동에 즐비한 다양한 팝업 공간들, 브랜드들의 플래그십 스토어들이 모두 비슷한 압박에 시달린다.
계속해서 더 크고, 더 화려하고, 더 압도적인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무언의 경쟁.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점점 진정성에서 멀어지는 아이러니. 모든 브랜드가 '임팩트 있는 매장'을 만들려고 하다 보니, 정작 진짜 차별화는 어려워진 상황이다.
스케일의 경쟁은 결국 한계가 있다. 그 한계에 다다를수록 브랜드들은 더 큰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임팩트의 연속이었던 공간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곳을 발견했다. 5층에 위치한 누데이크 티하우스다.
일반적인 티 시장이 '어떤 찻잎이 들어가 있는지'에 집중할 때, 누데이크는 패션/뷰티 브랜드답게 아로마 노트처럼 탑/미들/베이스로 티를 소개한다.
마치 향수를 설명하듯이. 항상 커피 시장을 뛰어넘기 어려웠던 티 시장에서 이런 접근은 시의적절한 도전이다.
무엇보다 이 공간은 '쾌적하고 널찍하다.' 옆 테이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만큼 공간감이 좋고, 실제로 '다양한 티를 마시러 종종 올 것 같은' 분위기를 갖고 있다.
아득히 높은 천장, 공간을 감싸는 커튼과 카펫, 가구의 볼드한 색감, 그리고 이 세계에서만 사는 시민(?)처럼 트롤리를 끌며 응대하는 직원들이 주는 이질적이고 신비로운 '저 세상' 느낌.
MAKE NEW FANTASY TEA OF YOUR DREAMS
꿈꾸던 새로운 판타지 티를 만들어보세요
누데이크의 슬로건에서 핵심을 발견할 수 있다.
하우스 노웨어 서울 전체는 '한 번은 와봐야 하는 목적지'이지만, 그 안의 누데이크 티하우스는 '계속 오고 싶어지는 getaway(도피처) 공간'의 성격을 갖는다.
물론 이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 하나하나를 따져보면 사실 임팩트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다.
예를 들어, 사용성이 좋진 않지만 식기와 커틀러리(silverWEAR)를 "입을 수 있는" 단발성 경험과,
버섯, 구두, 시가 등 비주얼과 맛이 독특한 실험적인 디저트는 오롯이 화제성에 집중한다.(디저트 메뉴는 정말이지, 리뉴얼이 자주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하나하나 감각하고 싶은 티 컬렉션과 의외성이 가득한 티하우스 공간 자체는 언제든 이 세상에서 벗어나 오감으로 저 세상으로 도피하고 싶은, 지속가능한 재방문을 염두에 둔 교묘한 설계처럼 느껴진다.
하나의 건물 안에서 서로 다른 전략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것.
당연하고 뻔한 하이브리드 전략 같지만, 이런 복합적 접근을 한 곳에서 조율하기란 쉽지 않다는 걸 체감했다. 그것도 다섯 개의 브랜드를 한 번에 소개할 때는 더더욱.
누데이크 티하우스가 보여준 건 명확하다. 진정한 데스티네이션이 되려면 단순한 임팩트 경쟁을 넘어 지속가능한 경험을 설계해야 한다는 것. 첫 방문의 충격도 중요하지만, 그 충격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계속 찾고 싶어지는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크기의 경쟁이 아닌, 경험의 깊이로 승부하는 것.
하우스 노웨어 서울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계속해서 고객을 놀라게 하기 위해 더 크고 담대한 스케일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누데이크 티하우스처럼 다른 차원의 경험을 늘려갈 것인가. 물론 이 모든 걸 뛰어넘은 제3의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겠지만.
확실한 건, 이번 사옥 방문이 공간 브랜딩 컨설턴트로서 깊게 고민해야 할 화두를 던져준 꽤나 "임팩트 있던"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오래된 젠틀몬스터 팬으로서, 하우스 노웨어 서울이 단순한 '임팩트의 과시'를 넘어 'timeless 한 경험의 집합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의 다음 공간을 기대해 본다.
결국 브랜딩에서 가장 어려운 건 임팩트와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잡는 것이다. 순간의 화려함도 중요하지만, 그 화려함이 진짜 의미 있는 경험으로 기억되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데스티네이션의 조건이다.
PINCH. Director K
Director K는 유연한 사고와 깊은 공감력으로 사람과 브랜드 사이의 미묘한 접점을 포착하고,
그 본질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스토리텔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