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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나들'의 브랜딩 레시피

영화<논나>가 보여준 시니어 브랜딩의 미래

by PINCH

PINCH.POINT

완벽했던 이탈리안 다이닝 데이

전날 친구가 선물로 건넨 시칠리안 와인 한잔을 따르고, 냉장고에서 시들어가고 있는 새우와 방울토마토를 구출하기 위해 만든 파스타를 입안에서 오물대며 넷플릭스에서 영화 <논나(Nonnas)>를 봤다.


스크린 속 논나들이 파스타를 만드는 손길과 내 앞의 접시가 묘하게 겹쳐지는 순간, Director K.(이하 K)는 영화 속으로 폭 빠져들었다.


어떤 이에겐 낯설지만, 어떤 이에겐 무척 친숙한, '할머니의 존재감'을 새롭게 조명한 영화 <논나>.


수십 년간 가족을 위해 요리해온 그 손이, 이제 전 세계 사람들을 위한 메뉴가 된다. 단순한 요리 영화가 아니라, 브랜딩의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순간이었다.



영화 <논나>는 실화다.

뉴욕 스테이튼 아일랜드의 작은 레스토랑 '에노테카 마리아(Enoteca Maria)'에서 시작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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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스테이튼 아일랜드에서 여전히 운영중인 식당 'Enoteca Maria' (image: 좌)tripadvisor, 우)CBS News)


창립자 조디 스카라벨라(Jody Scaravella)가 어머니와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2007년에 문을 연 이곳은, 2015년에 전 세계 할머니들이 돌아가며 요리하는 레스토랑이 되었으며, Nonnas of the World 라는 브랜드로 확장하게 된다.


Nonna. 이탈리아어로 '할머니;를 뜻하는 이 단어 하나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실제 할머니들이 주체가 되어 자신만의 레시피로 요리하고, 손님과 대화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브랜드가 사람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브랜드의 중심이 되는 구조다.


이 단순하지만 강력한 구조에서 시니어 브랜딩의 미래가 보였다.





슬픔에서 시작된 브랜드, 가장 진정성 있는 이야기


2007년, 어머니와 할머니를 잃은 슬픔 속에서 그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작은 레스토랑. 처음에는 이탈리아 할머니들만 요리했지만, 2015년 아주 자연스럽게 전 세계 할머니들로 확장했다.


Food is memory. And memory is the thread that ties us all together.
음식은 기억이고, 기억은 우리를 단단하게 연결하는 실이죠.

- Jody Scaravella(Nonnas of the World 창립자)


브랜드 컨설턴트로서 이런 이야기를 만나면 짜릿하다. 마케팅을 위해 만든 가짜 스토리가 아니라, 삶에서 우러나온 진짜 이야기. 슬픔을 딛고 일어선 회복력. 개인적 경험을 보편적 가치로 승화시킨 확장성.


이 모든 것들이 브랜드의 모든 터치포인트에서 일관되게 드러날 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브랜드의 힘이다.




미션부터 제품까지, 빈틈없는 브랜드 일관성


Nonnas of the World 브랜드를 살펴보면 브랜드 컨설턴트로서 감탄이 나온다. 모든 것이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완벽하게 정렬되어 있다.


Mission: "할머니들이 자신의 요리 유산을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든다. 부엌을 교실로, 어른들을 선생님으로, 전통을 현대로 연결하는 다리로 만들어 세대 간 유대를 강화하고, 고령자 고립을 해결하며, 변화하는 세상에서 회복력을 기르고, 문화 간 이해와 인식을 촉진한다."


Vision: "세대 간, 문화 간 연결을 위한 글로벌 힘이 되어 지역사회, 분야, 대륙을 넘나드는 진정하고 지속적인 영향을 만든다."


이런 거창한 미션과 비전이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가치가 수년간 실제 경험으로 구현되고 있다. 레스토랑에서 할머니와 손님이 나누는 대화 하나하나, 할머니의 특정 레시피를 담은 파스타 소스, 할머니들의 유산을 기념하는 굿즈, 최근 설립한 비영리 재단까지.


TAL-nonnas-of-the-world-merch-ENOTECAMARIA0223-97d0718d1b2643079a75455e0005c460.jpg Nonnas of the World의 굿즈(travelandleisure.com)


진짜 브랜드는 인위적으로 하나하나 만들어지는게 아니라, 그저 '여성들이 요리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이 진정성이 중심이 되어 모든 브랜드 경험에서 일관되게 드러난다는 것을 이 식당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확장성'과 '연결'이라는 브랜드의 힘

매번 새로운 논나들과 그들의 메뉴를 업로드 하는 창립자 Jody(인스타그램 @nonnasoftheworld)

논나 프로젝트의 진짜 천재성은 '확장성'에 있다.


이탈리아 할머니들로 시작했지만, 이 모델은 전 세계 어떤 문화권에서도 적용 가능하다. 한국의 할머니들도, 멕시코의 할머니들도, 인도의 할머니들도 모두 자신만의 '논나'가 될 수 있다.


각기 다른 문화권의 할머니들이지만, 모두 같은 '논나'의 정체성 안에서, 그리고 각자의 음식을 통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것이 진정한 글로벌 브랜드가 아닐까. 하나의 문화를 강요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문화를 존중하면서도 하나의 가치로 묶어내고 연결시키는 것.


할머니와 손님 사이의 연결. 서로 다른 문화 사이의 연결. 과거와 현재 사이의 연결. 그리고 세대와 세대 사이의 연결.


역사적으로 매우 분열된 시기를 지나온 우리에게 음식은 음악과 예술처럼 그러한 장벽을 허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음식은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다른 문화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어떤 개인적 편견이든 더 이상 전면에 드러나지 않도록 해줍니다.

Coming off a very divisive period in history, it really helps to bring down those barriers in the same way music and art does. It helps you engage with another culture without even realizing it, so that your personal biases, whatever they may be, are not in the forefront anymore.

- Jody Scaravella

단순히 메뉴에 있는 음식을 파는 게 아닌, 할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는 경험을 통해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며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그런 강력한 브랜드인 것이다.




'원할머니보쌈'과 'Nonnas of the World'의 결정적 차이


한국도 이미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 2025년에는 초고령사회가 될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논나가 제시하는 브랜딩 방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니어를 '소비의 대상'으로만 보는 게 아닌, '가치 창조의 주체'로 보는 시각. 나이를 약점이 아닌 강점으로 재정의하는 관점.


물론 이미 우리나라에도 '논나(할머니)'가 있다.


1975년에 시작한 창업주 김보배 할머니의 '원할머니보쌈', 1970년경 김칠선 할머니가 익산역에서 간이 맥주집으로 시작한 '역전할머니맥주' 등, 대한민국 논나들이 주는 브랜딩 파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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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논나들이 이끄는 대표 브랜드 '원할머니 보쌈족발' & '역전 할머니 맥주' (image: 좌)한국경제, 우)ITbizNews)


하지만 고객들이 바라보는 국내 논나들과 뉴욕의 논나들의 차이는 뭘까.


대한민국 '할머니' 브랜딩 특징

"할머니의 정성", "옛날 그 맛"

과거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감정 소비

옛 시골 인심 느낌의 가성비의 가치

특정 할머니의 레시피를 브랜드화하여 제품의 품질을 담보하는 마케팅 방식


Nonnas of the World의 브랜딩 특징

"할머니들의 새로운 시작", "경험의 가치"

현재와 미래를 향한 적극적 움직임

몇십년간 쌓아온 각 문화권의 할머니들의 유산(heritage)을 먹어본다는 희소성의 가치

모든 할머니들이 주체가 되는 플랫폼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결정적이다.

하나는 특정 한 할머니가 지닌 가치를 1대 다수로 전달하는 방식이며, 다른 하나는 모두의 할머니가 같은 세계관 안에서 다수 대 다수로 지속가능하게 운영가능한 방식이다.

또한 하나는 소비하는 브랜드며, 다른 하나는 참여하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더 중요한 건, 시니어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다.

기존 국내 브랜딩이 할머니를 '과거의 향수'로 소비한다면, 논나는 할머니를 '현재의 가치 창조자'로 존중한다.


시니어 브랜딩의 새로운 가능성


이러한 구조에서 시니어 브랜딩의 훌륭한 잠재력을 엿볼 수 있다.

'도움을 받는 대상'으로만 비춰지는 시니어를 '가치를 창조하는 주체'로서 포지셔닝하는 것이다.


그들의 나이 자체가 위대한 자산이다. 젊은 세대가 감히 따라하기 힘든 그런 자산들:

수십 년간 축적된 요리 경험

세상을 살아온 지혜와 이야기

젊은 세대가 갖지 못한 여유와 깊이



결국 논나들이 보여준 건 '브랜딩의 본질'이었다.


화려한 마케팅이 아니라, 삶에서 우러나온 진짜 이야기. 젊음이 아니라, 시간이 쌓인 깊이. 그리고 무엇보다, 기억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잇는 따뜻한 연결. 창립자 조디 스카라벨라의 개인적 그리움에서 시작된 이 브랜드는 이제 넷플릭스 영화가 되어 전 세계에 메시지를 전한다.

nonnas.jpg?w=863&h=0&crop=1 소소하게 웃음지으며 볼 수 있는 귀한 영화(image: STREAMING MOVIE NIGHT)


PINCH가 추구하는 '한 끗'도 결국 이런 것이다.

특정한 브랜딩 기술이나 트렌드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본질적인 가치를 찾아내는 것. 당신의 브랜드에도 이런 '논나의 지혜'가 숨어있지 않을까? 시간이 쌓인 경험, 진짜 이야기, 그리고 기억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따뜻한 힘 말이다.


시칠리안 와인 한 잔과 함께 이 영화를 보며, 나는 브랜딩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목격했다. 개인의 그리움이 전 세계의 공감으로 확장되는 그 순간을.


영화 <논나>를 아직 보지 않았다면, 논나들이 만드는 그 따뜻한 연결의 순간을 직접 경험해보시길. Salute!


PINCH. Director K

Director K는 유연한 사고와 깊은 공감력으로 사람과 브랜드 사이의 미묘한 접점을 포착하고,
그 본질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커뮤니케이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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