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알콜 드링크를 찾다 발견한 브랜딩의 아이러니
PINCH.POINT
좋은 제품일수록 설명은 단순해야 한다는 걸 논알콜 드링크를 찾다가 깨달았다.
참 좋았는데, 그거 브랜드 뭐더라? 하게 되는 이유.
와인 말고 뭘 준비하지?
91-95년생 베이비부머들의 베이비 러시가 시작됐다. 내 친구들이 너도나도 임신을 하니 출산율도 덩달아 올라간 기분이다. 문제는 집들이 준비. 평소라면 당연히 와인을 준비했을 텐데, 이젠 그럴 수가 없다.
무알콜 맥주? 맛도 멋도 없고.
과일주스? 너무 뻔하고.
탄산수? 밋밋하고.
뭔가 신박하면서 상큼하고, 내 소중한 친구들의 눈을 번쩍 뜨게 해 줄 그런 음료는 없을까?
TWL 편집샵의 여름 이벤트에서 우연히 만난 Intuition. 옥인다실 이혜진 대표님이 런칭한 브랜드였다.
차(茶)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대표님의 설명, 음식과의 어울림, 차를 마시는 다양한 방식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던 한 여름 낮.
예쁜 샴페인 병에 담긴 청량 하면서도 쌉싸름한 맛의 스파클링 티.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아, 이거다!" 싶었다.
나처럼 티백 우려먹기에 익숙한 사람에게 티는 그저 커피 대용품 정도였는데, 이건 정말 달랐다. 마치 무알콜 스파클링 와인 같은 깊이가 있었다. 저온침출한 홍차로 만든 '논알콜, 무가당 콜드 브루잉 티'라는 소개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술 좋아하는 사람에게 임신 기간은 상상하기도 싫은 혹독하고 긴 열 달이다. 그런데 이 정도로 훌륭한 대안이 있다면? 오, 해볼 만도.
인스타 광고로 자꾸 뜨던 26 Tea Haus(이름이 기억이 안 나서 또 찾아봐야 했다)
솔직히 처음엔 망설였다. 로고만 봤을 때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다이어트, 클렌징 같은 광고 속 메시지가 마치 여느 인스타 광고 속 낚시글 같이 느껴졌다.
'이거 한 잔만 마셔도 살이 쭉쭉 빠져요' 같은 거짓부렁에 더 이상 속지 않겠다고 다짐한 터라.
그런데 그냥 패키지가 예뻐서 샀다(매의 눈으로 제품을 뜯어보다가도 결국 그냥 예쁘면 사게 된다. 그리고 나쁜 리뷰가 없다면야 한 번쯤 시도하게 된다.)
포장부터 진심이 느껴진다
아이스박스에 병이 하나하나 꼼꼼하게 포장되어 있었고, 마치 "빨리 냉장고에 넣지 않으면 이 유익균들이 다 죽어버릴 거야! 이건 정말 생(生) 콤부차라고!!"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맛? 완전 만족. 특히 파인애플&홉 맛은 마치 IPA 무알콜 버전 같은 깊이가 있었다. 맥주 대신, 아무 영양가 없는 무알콜 맥주 보다야 맛있고 예쁘고, 그리고 나름 소화에도 도움이 될 것 같은.
집에서 고기 구워 먹을 때 샴페인 잔에 따라 마시니 기분이 얼마나 좋던지. 피크닉 갈 때 플라스틱 와인잔에 콤부차를 따라 마시는 재미도 쏠쏠하다.
제품은 너무나 훌륭한데, 브랜드는 조금 어? 뭐지?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느낌이 있다.
1. 기억에 남지 않는 이름들
제품명은 준콤부차플러스, 브랜드명은 26 티하우스, 사명은 26도라인, 브랜드 심볼은 26TH.
제품에서 브랜드명, 로고와 함께 연상하는 것이 쉽지 않다.
2. 혼란스러운 제품 패키지명
기본 제품 라인업은 총 6가지. 맛을 중심으로 네이밍 하다 보니 기본적으로 좀 길다.
준콤부차플러스_파인애플&홉
준콤부차플러스_애플&펜넬
준콤부차플러스_카다멈&배...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교차판매를 위해 6개 세트 상품은 7일 클렌징 프로그램, 2개씩 짝지어서 Deep Notes Soft Night 같은 패키지명을 또 붙인다.
상품을 사러 온라인 페이지에 들어가서 "이게 대체 어떤 상품이지?"를 파악하는 데만 한참 걸린다. 뭘 살지 고민하다가 그냥 나오게 되는 마법의 페이지.
3. 너무 헤비한 브랜드 메시지
온라인 몰과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웹페이지 스타일, 이미지의 감도에 놀랐다. 사장님이 디자이너 출신인 게 분명해. 상세페이지 문구 하나하나, 이미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고르셨을 것이 눈에 선하다.
그런데 좀 어렵다. 명확한 장점이 있는 제품에 비해 조금 헤비한 느낌이 든다.
기억에 남는 메시지 한 줄, 내가 제품을 사게 만든 한 줄은 '맥주 대신 건강하게 마시는'이었다.
하나의 메시지를 강조하고, 나머지는 부차적인 것으로 빠져도 되지 않을까? 요즘 너도나도 하는 웰니스, 클렌징, 다이어트 같은 키워드는 제품의 진짜 장점을 오히려 희미하게 하는 것 같아서 아쉽다.
브랜드를 운영하다 보면 욕심이 생긴다. 애써 만든 제품을 어떻게든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고 싶어서 좋은 것들을 하나둘 쌓아 올리다 보면... 정작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는 역설이 생긴다.
Intuition과 26 Tea Haus, 두 브랜드 모두 맥주와 와인을 대체하는 훌륭한 옵션을 제안한다.
본질에 집중하며 간결하게 존재하는 Intuition, 좀 더 큰 의미를 부여하며 존재하는 26Tea Haus. 두 브랜드를 관찰하며 논알콜 드링크 세계가 점점 더 풍요로워지는 것 같아 좋았다.
웰니스라는 단어가 더 이상 뭔가 특별히 쫓아야 하는 말이 아니라 그저 당연해져가고 있는 듯하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진정성으로 가득한 두 브랜드처럼, 이런 진정성이 느껴지는 브랜드를 찾으면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어지고, 이 브랜드를 잘 설명하기 위해서 내가 더 열정적이 된다. 건강한 먹거리 시장에 이런 브랜드가 더 많이 생기고,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훌륭한 제품에는 단순한 소개가 절실하다.
한 가지, 두 브랜드를 보면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소비자가 쉽게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는가?
한 줄로 설명 가능한 브랜드 정체성, 쉽게 인지되는 네이밍 시스템, 소비자 니즈에 직접적으로 와닿는 메시지.
용기 있는 선택과 집중이 브랜딩의 핵심이다.
PINCH. Director S
Director S는 냉정한 분석과 섬세한 감각으로 변화의 흐름 속 기회를 포착하고,
아이디어를 실행력 있는 전략으로 체계화하는 로드맵 메이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