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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무송 주 Jun 19. 2021

나의 공간을 정의하는 못난이 물건들



대나무 칫솔, 천연 수세미, 다회용 나무 용기

색깔이 없고 향기가 안 나고 다듬어진 모양새라는 게 없다.

그저 '자연답게, 자연스럽게' 시선과 마음을 끌어당긴다.


환경운동을 취미로 삼으면서부터 텀블러와 장바구니 에코백을 가방 속에 항상 챙겨 다닌다. 두 가지 물건에 담아둔 자아도취와 허세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비로소 나는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나만의 공간을 친환경 물건들로 채우기 시작했다.


비움으로 채운 거실을 지나 화장실로 들어가면, 투박한 모양의 대나무 칫솔이 곧게 서있다. 바로 옆에는 갈색 비누가 턱 하니 놓여 있다. 주방 쪽으로 눈을 돌리면 못생긴 천연 수세미, 삼베 행주와 그물 가방이 이 집에서 가장 오래된 터줏대감인 양 배를 깔고 드러누워 있다.


단순 소모품이 아닌 ‘내 것’인 물건들이다. 그동안 살면서 얼마나 많은 칫솔, 치약, 샤워용품, 세제와 수세미를 사서 썼을까. 가격과 브랜드만 보고 대충 고른 플라스틱 물건이었을 뿐, 단 한 번도 ‘나의 물건’로서 소유해 본 적은 없다. 2년 전 가장 마지막에 썼던 플라스틱 칫솔은 색깔 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무슨색이었던가...


새로운 취미가 생긴 이후부터는 일상의 물건을 조금 더 특별하게 대하게 되었다. 물건의 색감과 촉감, 저마다의 추억 하나하나 세세히 기억하면서 말이다. 물론 나의 공간의 감정 기복에도 변화가 생겼다. 인위적인 색과 향이 사라지는 동시에 눈과 마음이 편해지는 물건들이 늘어나고 있다. 내가 머무는 공간은 한결 여유롭고 편안한 성격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가장 아끼는 평생 쓸 물건: 나무 칫솔

보통은 다들 이를 닦을 때 어떤 생각을 할까? 2년째 나무 칫솔을 물고 하루를 시작하며 매일같이 묘하게 낯선 감정을 느낀다. 오랜 시간 플라스틱 소재 사용에 익숙해져 버린 탓인지 나무의 촉감과 무게는 여전히 낯설다. 입안에 닿는 나뭇결의 감각도 신기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건 이가 정말 잘 닦인다는 사실이다. 대나무 칫솔의 쓰임새는 정말 탁월하다. 이 기특한 물건은 몽롱한 하루의 시작과 지친 하루 끝에 나타나 내가 지향하는 '삶의 ' 생각해보게끔  준다.  



의외로 마음에 드는 물건: 천연 수세미

50cm 수세미의 까칠하고 빳빳한 첫인상에 압도되었던 기억이 있다. 거친 수세미는 곧 적당히 힘을 빼더니 식기 모양에 맞춰 유연하고 강단 있게 몸을 비틀었고, 요령 있게 모든 때를 제거했다. 오랜 시간 풀숲에 숨어 자라온 제야의 고수답다. 매번 설거지를 할 때마다 느끼지만, 친환경 소비는 특별한  아니다. 공장이 만들어낸 값비싼 대체품을 소비하는 대신, 자연이 우리에게 선물해  날것 그대로를  찾아서 쓰면 되는 거 아닐까.


소원해진 사이: 천연 비누

천연비누는 첫인상부터 친근하게 느껴졌지만, 끝내 ‘나의 물건’이 되어주지는 않았다. 민감성 피부에는 맞지 않았다. 제품을 계속 바꿔 봐도 따가움 증상은 날로 심해졌고, 애꿎은 비누만 과소비했다. 결국에는 친환경 세정제로 돌아왔다. 플라스틱 통의 머리를 펌핑할 때마다 내 마음도 짓눌리지만, 이런 실패 경험은 취미생활을 이어가는 데 도움이 되었다.


새로운 취미에 빠져 친환경 제품들을 강박적으로 사 모으고 있었는데, 미끌한 비누가 나를 넘어뜨린 거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환경운동 소비의 목적은  좋은 친환경 물건을  많이 사서 더 자주 소비하는  아니다. 오래오래   있는 ‘나의 물건 찾아보기로 했다.




소피넛 빨래 세제, 그물 장바구니, 다회용 지퍼백, 재사용 화장솜 등등... 시중에 나온 친환경 제품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 중에서 한두 개씩 신중히 골라 직접 사용해보면서 ‘나의 물건’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어린 왕자가 여우를 만나길들이듯 서로에게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인 양 대하고 있다.


이렇게 내가 모든 물건을 길들였다는 큰 착각을 하는 동안, 우리 집 친환경 여우템들은 나만의 공간을 새롭게 정의하며 천천히 나를 길들이고 있다. 고맙게도 말이다.

  




* [내 취미와 취향은 환경운동] 주제별 정보와 취미생활 팁을 별도로 정리 중입니다. 잘 준비해서 공유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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