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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무송 주 Sep 29. 2021

옷장을 비우니 나만의 취향이 생겼다

[나의 취미와 취향, 환경운동 (4)]

옷장을 비우니 나만의 취향이 생겼다.  




취미생활을 시작한 지 2년째, 하루의 색감이 단조롭고 깨끗한 톤으로 바뀌었다. 반면, 일상의 부피와 무게는 줄어들지 않았다. 새로 산 텀블러와 에코백, 집안 곳곳의 친환경 아이템들이 커다란 존재감으로 나의 공간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다.  


뭐든 좀 비워야겠어. 마음속에 숨겨놓은 값비싼 쓰레기부터 한데 모아보기로 했다. 우선 옷장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매일 같이 나와 눈이 마주쳤을 텐데도 지난 일 년간 단 한 번도 옷장 밖으로 나온 적 없는 셔츠가 한가득이었다. 안 입는 옷을 한두 개씩 꺼내놓다 보니 옷장의 1/3이 비워졌다.


분명 옷 한 벌의 무게와 부피는 그다지 크지 않은데 모아 놓으니 아주 큰 덩어리로 보였다. 얼마 전 유튜브를 보다가 가나 아크라 강을 가득 채운 옷 쓰레기 영상을 찾은 적이 있다. 큰 소들이 옷 산 위에 올라서서 합성섬유를 뜯어먹던 모습이 기억에 선명하다.


우리나라에서만 연간 40억 톤의 의류가 소각된다고 하니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우선 나부터라도 더 이상 쓰레기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중고시장에 글을 올렸다. ‘옷장 정리 겸 아끼는 옷을 내놓습니다.’ 속마음의 괄호를 열고 ‘환경 감수성을 거래합니다’ 괄호 닫고.



남길 옷과 버릴 옷을 구분하는 기준은 단순했다. 처음에는 오롯이 직관이 시키는 대로 옷 한 벌 한 벌의 수명을 가늠해보았다. 나의 무의식은 앞으로 5년, 10년 오래오래 아끼며 입을 옷들을 몇 초 만에 골라냈다.


두 번째 기준으로는 '의식적으로’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옷을 속아냈다. 평소 좋아했던 Z사, H사의 옷들은 분초 단위로 최신 유행을 보여준다. 그만큼 빠른 속도로 늙어버리고 순식간에 옛것이 되어버린다. 내 삶이 폐기물을 만들어내는 속도를 줄여보자는 생각으로 Z사, H사 옷들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부하기로 마음먹었다. 두 박스가 나왔다. 마지막으로 가죽 소재 옷을 빼내며 반나절의 노동을 끝냈다.



옷장을 비우니 새로운 취향이 보였다. 그간 꽤나 진심을 다해 환경을 생각하고, 자연의 색감과 결을 닮아가려 노력했던 시간이 '취향'으로 나타난 거다. 나는 옷을 좋아하는 편이고, 단정하고 깔끔하게 입기 위해 신경을 많이 쓴다. 하지만 나만의 특별하고 고유한 패션 취향이랄 게 없었다. 광고 속 예쁜 옷을 사고, 유행하는 아이템을 걸치고,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강한 패턴과 짙은 색감의 옷들도 몇 개씩 갖고 있었다.


'충동구매'와 '충동 버림'이 휩쓸고 지나간 나의 옷장은 이제 깨끗한 톤의 단단한 섬유들로 채워져 있다. 옷을 고를 때마다 환경 운동을 취미 삼아 즐기는 사람들의 옷장을 상상해 보게 된다. 취향은 개인마다 크게 다를 듯싶다. 누군가의 옷장 서랍에는 자연소재와 재생섬유로 만들어진 옷이 담겨 있을 테고, 또 누군가의 옷걸이에는 요즘 유행하는 에코 패션의 독특한 개성과 감각이 걸려 있을 테다.




에코 패션이 떠오르면서 성별, 나이를 불문하고 나와 같은 취향의 사람들이 늘고 있다. 유명 패션 블로거들이 앞다퉈  P사 가방을 들고 사진을 찍는다. 교복 브랜드에서도 친환경 소재의 옷들을 경쟁하듯 만들어 낸다. 아이들의 꼬까옷 자락에 나뭇잎 마크가 달려있다. 자전거 폐품과 천막으로 만들어진 투박한 가방은 의외로 누구에게나 잘 어울린다.


 모든  기업의 그린 워시 마케팅 수단이자 과장·허위 광고라며 힐난하는 사람들 또한 늘어나고 있다. 살결에 직접 닿는 변화이기에 거부감이 훨씬  큰가 보다.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명이라도 (시끄러운 마케팅에 혹해서라도) 환경 감수성을 입어보는 기회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  땀의 호기심은 새로운 취향과 취미로 이어지고, 이내 우리 모두에게 환경 윤리라는 새로운 가치를 입혀주게 되지 않을까. 여름에는 덥지 않게, 겨울에도 춥지않게 지낼  있도록 말이다.


옷장을 비우고, 옷걸이를 몇 개 남겨두었다.



* [내 취미와 취향은 환경운동] 주제별 정보와 취미생활 팁을 정리 중입니다. 잘 준비해서 공유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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