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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e Sep 21. 2015

질문달밤



일평생 질문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언젠가 의미를 찾는 것과 정의를 내리는 것에 성의를 잃게 된다면, 짙었던 모든 미담(美談)이 일순간의 지난 계절로만 여겨진다면, 결국 이 모든 것이 삶에 끼칠 영향이 아주 미미할 뿐이라면, 살아있고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는 어디에서 얻어야 하는 걸까.


관계의 피로로부터 오는 어떠한 낭비 속에서, 이기는 것의 무의미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은 존재할 뿐이어서 어떤 날은 그리도 괴로웠던 걸까. 어느새 달은 움직여 갔다. 목적도 없이. 움직인 그 모양 따라 아침이 오고 밤이 오고 하는 것을. 아침이 온다고 답을 얻고 밤이 온다고 세상을 잃는 것은 아니었다.



- 달이 참 밝네.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훌륭하게 존재하는 법을 나는 모른다. 다시금 시선의 고리는 달에 머물렀다. 저 달이라는 것이 언제부터 존재해왔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 내가 죽은 다음날에도 뜨겠지. 달의 미소가 은은한 것이 이미 나 같은 놈을 여럿 본 모양이다.



- 내가 무엇을 알겠습니까. 당신의 그늘 아래서 아주 짧은 밤 같은 시간을 보낸 후 지고 말겠죠.



모든 것들을 알아온 달에 비해 나의 생이 너무도 짧았다. 아마 살아있는 동안 어리석을 것이고, 모든 것이 낯설 것이다. 달이 아주 조금 움직일 동안 더욱 작은 웃음을 지었다. 낯선 것들 사이에서 어리석은 내가 취했던 바보 같은 태도를 하나하나 곱씹으며. 관계하는 모든 것들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때가 많았고 대체로 과오를 반복했다. 그것들은 때로 거짓을 넘나들면서 마치 아름다운 유영인 척 자신을 속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약함을 고백한 밤은 이미 수두룩하고, 오늘 밤 또한 지친 등을 내보이며 돌아눕고 있었다. 또 한 번 모든 과오를 고백한다면 조금 더 정직한 쪽으로 다가설 수 있을까.


세상만 있으면 될 것이지. 왜 그 와중에 나와 당신이 있는 것일까. 파열하는 우리를 빼놓고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워 보여. 우리만 없다면 이 아름다운 원 안에서 세상은 영원히 존재할 수 있을 텐데. 계속되는 질문에도 세상은 가만히 존재할 뿐이었다. 아름답게 존재할 수 없다면, 그나마 가장 자연스럽게 살다 갈 수 있는 법을 모색해야겠어. 벌레가 울었다. 가만히 있으니 내가 갔다고 생각을 한 모양이지. 말을 건네니 대답이 없어 아무 말이나 툭 툭 내뱉는다. 만일 저 벌레가 내 말을 알아듣는다면 조금 더 정직한 마음으로 말을 뱉으리라.



- 내 맘 같지 않네.



정직하고자 할 때에도 세상의 일이란 것은 흐트러진다. 그렇지만 역시 세상의 일이라기보다는 내 쪽의 일인가. 낯선 끝을 보이며 사라진 것들을 떠올린다. 마치 밤을 처음 맞이하는 것처럼 두려움이 엄습한다. 잘못하다간 내 맘 하나 잘 모르는 채로 생을 마감하겠어. 어쩌면 제일 두려운 것은 정직함으로 삶을 행하는 일이다. 그러나 정직함이란 오직 정직함으로 행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것은 단지 두려움을 벗어나는 것이나 용기를 내는 것으로 대체되지 않는  듯했다. 그러니까 가령 모든 것을 저버리지 않고 존재케 하는 일. 그러기에 나는 떠난 이의 등도 존재케 하여야 하고, 명실 공히 못난 나의 얼굴 또한 존재케 하여야 하고, 누군가의 못난 행동조차 결국은 존재케 하여야만 했다.



- 그래. 모든 것을 존재케 할 수만 있다면.



그닥 어마어마한 의미를 찾지 않아도, 정의가 내려지지 않아도, 새로운 미담(美談)이 지난 계절로 접어들어가도, 모든 것의 영향이 아주 미미할 뿐이라도, 괜찮을 것 같다. 살아가는 일은 역시 파괴보다는 질서로 나아가야지. 관계하는 모든 것들이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눈을 감고 생각을 한다. 내일 아침 이 요망한 눈을 뜨면 진정으로 눈을 맞추고 말을 건네리.


풀잎과도 같은 단단한 생명이 발 밑을 간지럽힌다. 살짝 스치는 이슬방울로 살아있음을 알린다. 생명이다. 그것은 도무지 나 따위가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어서, 난생 처음 보는 풀잎인데도 눈물이 날 것만 같다.



- 아, 오늘도 변함없는 저 달의 포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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