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ine Sep 11. 2015

안경




마주한 눈망울의 움직임을 따라 마음이 덜컹였습니다. 별 하나를 들여다보니 그 안에 있던 모든 것. 밤을 분주히 스치는 능선 끝 나뭇가지는 점점 또렷해졌지요. 나는 분명 어스름한 안도를 느꼈습니다. 아직도 별과 나뭇가지와 눈망울이 궁금하여 안경을 낍니다. 문득 언제까지 이것들을 궁금해할 수 있는지가 더욱 궁금하기도 했지요.



어제는 안경도 렌즈도 챙기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처음 안경을 벗기어낸 것은 당신이었지요. 끊임없이 보는 것만큼 가끔은 보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말입니다. 가끔 눈 언저리가 뻐근해져 올 때면 당신의 음성이 들리고, 그렇게 눈을 감습니다.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이 사라지고 몸까지 사라지는 기분이 듭니다. 연꽃잎처럼 우주를 둥둥 떠다니죠. 그런데 당신 그 밤의 연꽃잎을 기억하십니까? 물속은 아우성이고, 잎 또한 묵직하니 마냥 가볍지만은 않았지요. 눈을 감아도 몸의 기운은 쉽사리 없어지질 않았습니다. 생명이죠. 생명이란 얼마나 복잡하고 간단합니까. 꽃이 피어남과 같이 저 멀리 작은 빛 하나가 맺힙니다. 그러나 눈을 감고 마주하는 빛, 그것은 멀리 있는 듯 가까이 있는 듯 거듭 꼼지락거리며 눈꺼풀을 간지럽힙니다. 눈을 뜨지 않고는 못 배기지요. 그렇게 눈꺼풀을 열면 우주가 펼쳐질 줄 알았는데, 모든 것이 너무 가까웠습니다. 그것들은 별과 나뭇가지와 눈망울과는 사뭇 달랐어요. 눈을 떴는데 이제 무얼 할 거냐고, 자꾸만 묻더란 말입니다.



별과 나뭇가지와 눈망울이 보고 싶었습니다. 안경을 집에 두고 나왔는데 말입니다. 모든 신경이 그 생각에만 집중되었지요. 그 날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넓디넓은 우주에서 무언가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참으로 엄청난 일이지요. 그것은 안경 없이도 당신의 눈망울에서 어제의 별 하나를 찾아내는 일입니다. 사소한 일에 마음이 움직인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가 엄청난 일이기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하나의 별, 하나의 나뭇가지, 하나의 눈망울이 그 자리에 맺혀있기까지의 수많은 이야기를 상상해봅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 또한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을테지요.



온 세상이 절망일 때 마음은 존재로 흐르지 않았습니다. 절망 이후 더욱 견고해지는 이유는 더욱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이겠지요. 더욱 존재한다는 그것은 무엇이기에 그리 수많은 과거가 깨어져야만 했을까요. 어찌되었든 깨어지고 붙고 춤을 추는 마음들이 모여드는 곳에 우리의 존재가 있습니다. 주의를 기울여 분명한 춤을 출수록 몸의 형태는 뚜렷해졌습니다. 어쩌면 모든 존재는 주의를 토대로 할 테지요. 나 자신조차 스스로 주의를 기울여야만 비로소 그 곳에 존재할 테니 말입니다.



어마어마한 시력으로 끝까지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모든 것들을 당연한 듯 내 안에 품을 수 있다면. 그러나 시야에서 멀어져 간 것들을 보겠다는 것, 그것은 모든 것을 보겠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한 인간이 우주를 품겠다는 겁니다.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주위에 너절너절 널어놓다가 결국은 떠나보내야 했을 때, 분명 그것이 나의 영역이 아님을 느꼈습니다.



눈이 아닌 그 무엇이라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니 안경을 놓고 나왔다고 울상 짓지 말아요. 무엇이라도 손에 잡히는 대로 덧대어 보는 겁니다. 그렇게 그대로를 보게 된다면 우리 얼마나 떨릴까요. 그것은 나와 당신을 존재케 하는 것, 사랑한다는 명백한 증거지요. 그래요. 주의를 기울일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어딘가에 분명한 주의를 기울이고 싶어 안달 난 존재들일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아직도 품을 수 없는 것이 있을까 봐 걱정이 되나요?



괜찮아요. 나머지는 우주에게 맡깁시다.

우주가 우리의 나머지를 품어줄 테죠.




작가의 이전글 骨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