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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e Oct 04. 2019

20. 북한군과 갱도공사

군복무 2년째 되던 해였다. 우리 중대는 대대갱도공사에 동원되게 되었다. 6.25전쟁 때 미 공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방공호를 산속 암반지대에 만들면서 생겨난 것이 바로 갱도였다. 미 공군의 폭격에 하도 많은 병력과 장비를 잃은 북한군과 중공군은 고지전을 벌이면서 많은 갱도들을 만들었다. 그 전통은 전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북한의 4대 군사노선 가운데 한 가지가 “전국 요새화”였는데 그 요새화의 핵심이 주요 군사시설과 군수산업 시설의 지하시설화, 즉 '갱도화'였다. 그래서 대대 규모의 전투단위는 물론이고 독립중대까지 갱도가 다 있었다. 

                               출처: 이데일리(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갱도 입구)


대부분의 갱도는 기계수단과 기름이 없거나 부족해 군인들이 인력으로 만들었다. 갱도공사는 보통 정대와 함마로 폭약구멍을 뚫고 거기에 폭약을 넣고 폭파시킨 후 버럭을 처리하는 방법으로 진행됐다. 2인 1조가 되어 한 명은 정대를 잡고 한 명은 함마로 100대씩 정대를 조준해 내려친다. 그러면 정대를 잡고 있는 동료가 한 번 내려칠 때마다 정대를 한 번씩 돌려준다. 그러면 폭약구멍에서 돌가루가 생기는데 이걸 긴 숟가락 같은 것으로 파내준다. 이런 작업을 두 시간 정도 하면 길이 60~80cm 정도의 폭약구멍이 생기는데 여기에 폭약을 넣고 심지에 불을 단 다음 대피한다. 이런 전근대적 방법으로 갱도공사를 했는데 사고도 많이 났다. 불발 인줄 모르고 들어갔다가 폭약이 터지는 바람에 내가 복무했던 대대에서 2명이 죽었다. 우리 중대에도 부상병이 생겼다. 갱도공사는 병사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졌다. 처음 함마를 잡고 정대를 맞히지 못해 정대를 잡고 있던 고참의 손등을 내려쳤다가 정말 엄청나게 구타를 당했다. 그것 하나 제대로 못하냐면서... 그렇게 눈물 속에서 함마를 내리치는 방법을 알게 됐고 100개는 거뜬히 때리는 달인이 됐다. 


                                              출처: 연합뉴스(풍계리 갱도 지키는 북한군 장교)


그런데 갱도공사를 하다보면 여간 배가 고픈 게 아니었다. 한창 돌도 삭일 나이의 젊은 병사들인데 먹는 것은 옥수수밥 한 덩어리에 멀건 소금국, 염장무우 몇 조각뿐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날랜 병사들을 뽑아 도둑질을 내보내곤 했다. 이 병사들이 농장의 옥수수 밭이나 농장 식량창고, 심지어는 개인집을 털어 옥수수나 쌀을 훔쳐오면 옥수수는 닦아먹고 쌀로는 밥을 해먹었다. 산골이다 보니 입쌀은 적었고 개인집에서 도둑질을 하다 걸리면 농장 옥수수 밭에서 훔치는 것보다 처벌이 더 강해서 십중팔구는 옥수수를 가져왔다. 땀을 흘리고 난 뒤 먹는 닦은 옥수수는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갱도공사를 하면 오히려 다른 작업이나 훈련 하는 것보다 더 좋았다. 그리고 갱도 그 자체가 자연 냉방과 온방 역할을 해서 겨울에는 더워서, 여름에는 시원해서 좋았다. 땅 속은 바깥보다 서서히 덥혀졌다 서서히 식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래서 엄청 힘든 육체적 공사인데도 불구하고 갱도공사를 하는 중대 군인들은 오히려 바깥에서 훈련과 작업을 하는 군인들보다 야위지 않았다. 그래서 병사들은 은근히 갱도공사를 선호했는데 도둑질이나 무단외출, 탈영 같은 비리가 많아 보통 6개월에 한 번씩은 다른 중대와 교대를 시키곤 했다. 그때 갱도공사를 하던 군인들보고는 “두더지”라고 부르곤 했다. 갱도 속에 들어가 두더지처럼 굴을 판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2003년이었다. 그때는 내가 군관생활을 할 때인데 김정일의 특별지시가 하달됐다. 방어공사를 다그쳐 끝내라는 것이다. 그 방어공사의 핵심이 바로 갱도공사였다. 당시 국제사회의 시멘트 지원이 있었는데 그 시멘트를 모두 군부에 돌려 갱도공사에만 전용하도록 했다. 아마 용천 폭파사건 때문에 들어온 시멘트였던 걸로 기억된다. 문제는 갱도공사에만 써야 할 그 시멘트가 군 간부들 사택 건설 등 타용도로 많이 새나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콘크리트에 시멘트의 비율이 잘 지켜지지 않아 부실공사가 된 갱도가 많았다. 물론 1970~1980년대 만들어진 갱도들은 경제형편이 비교적 좋을 때 만들다 보니 질이 보장됐다. 그러나 90년대부터 벼락치기로 만들어진 갱도들의 안정성은 한심한 수준이었다. 한반도 유사시 한미연합군의 공습에 과연 그 갱도들이 제 구실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공습을 피하자고 만든 갱도들이 북한군의 무덤이 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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