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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e Aug 22. 2019

그리운 어머니에게

2013년 고향에 보내는 편지

어머니. 잘 계십니까?

멀리 서울에서 아들 인사드립니다.

벚꽃 만개한 서울의 거리거리에 화창한 봄기운이 넘치더니 오늘은 비가 추적추적 내립니다. 오늘이 곡우라네요.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이면 창 너머 텃밭의 옥수수는 으쓱으쓱 잘 크겠죠? 시름겨운 어머니 얼굴에 고운 미소가 잠깐이라도 어렸기를 가깝고도 먼 곳, 서울의 하늘아래서 이아들은 간절히 기원합니다.     


어머니...어머니...

이아들은 가슴속 가득 젖어드는 그리움에 아픈 마음을 달래며 격정 넘친 목소리로 가만히 속삭여봅니다. 아무리 불러 봐도 대답이 돌아올 리 만무하지만 어릴 적 그 목소리로 애타게 어머니란 그 이름 불러봅니다.      

어머니. 제 목소리 들리세요?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보며 어머니 계시는 그 곳에도 이 비가 내리겠지하고 생각해봅니다. 하늘을 적시는 이 비마저 아들을 걱정하시는 어머니의 눈물인 것만 같아 더더욱 그리움에 젖습니다. 어머니의 심정은 저보다 몇 백 갑절 더 하시겠지요? “지척이 천리”라더니 서울에서 차로 달리면 한나절 길밖에 안 되는 곳에 계시지만 뵙지 못하고 소식도 못 전한지 벌써 8년째 되어옵니다.      


어머니. 저는 여기 서울에서 건강한 몸으로 잘 있습니다. 그곳에서 이루지 못한 학업의 꿈을 이루고자 30대의 나이지만 어린 학생들과 지성의 상아탑이라 불리는 대학 강의실에 나란히 앉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사람은 배워야 한다고 어머니가 늘쌍 말씀 하셨죠? 어머니 말씀과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는 격언의 참뜻을 걸음걸음 새기며 열정을 다해 배우고 또 배웠습니다. 어디에 가든 부끄럽지 않게 살라던 어머니 말씀을 항상 명심하고 이아들은 지금 참다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당당하게 공공기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곳과 너무도 달라 어려운 점도 많고 시행착오도 겪고 있지만 꿈과 희망이 있기에, 어머니 앞에 다진 그 날의 맹세가 있기에 다 감내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 생각해보면 감사한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위해 땀 한 방울 흘린 일 없지만 저에게 이 나라는 보금자리를 주었고 새 생활의 꿈과 희망, 그리고 도전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청소, 식당일, 주차관리,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이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걸음을 뗐습니다. 또 다른 이별과 아픔을 겪고 “벽”에도 부딪쳐보면서 저는 그렇게 이 사회를 알아가고 인생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미소 짓는다”고 하죠.

이별의 고통과 그리움, 고독과 인생의 비애를 처절하게 체험하고 있지만 낙담하지 않고 청춘을 불태워 다시 한 번 비상할 꿈을 꾸며 저는 이 밤도 열정의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지금은 외롭고 힘들지만 결코 포기하면 안 되는 꿈이 있기에, 사랑하는 북녘의 가족들이 저로 인해 겪는 고통의 반대급부를 제가 누리고 있기에 이를 악물고 견뎌내고 뚫고 나가려 합니다.     


8년 전, 이 아들은 만남은 물론이고 생사도 기약 할 수 없는 먼 길을 떠나보내시는 어머니의 가슴 찢어지는 고통과 너무 우셔서 퉁퉁 부은 얼굴을 애써 외면하며 떠났었습니다. 격한 것이 왈칵 치밀어 올라 눈물이 솟구치려 했지만 군에 입대 할 때처럼 나약한 눈물은 보이지 않으리라 모질게 마음 다잡으며 그렇게 성큼한 보폭으로 길을 재촉했었습니다. 희망 없는 그 땅의 암울한 미래에 도저히 청춘을 맡길 수 없고 남한에서 꼭 성공해 어머니를 모셔 오리라는 결심이 더 컸었습니다. 물론 가까운 앞날에 통일이 되리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고요.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질려 맘 편한 날이 없었던 1년 남짓의 긴 여정 끝에 7년 전 드디어 서울에 도착했을 때 저는 그날이 생각 나 참고 참았던 눈물을 쏟고야 말았습니다.     


어머니... 저는 지금까지 나름대로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려 노력했다고 자부해왔지만 사실은 빚진 것이 많은 적자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모진 고통 속에서도 새 생명의 울음소리에 만 시름과 아픔을 잊으셨던 어머니...어려서는 철없어 애를 태우고 자라서는 철들며 어머니 속을 태웠던 이아들입니다. 그곳에서는 어머니의 아낌없는 헌신과 지극한 사랑을 자양분으로 구김살 없이 자랐고 다 자란 오늘에는 또 이렇게 가깝고도 먼 곳으로 떠나와 이별의 아픔을 겪게 만들었습니다. 항상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 희생위에 저의 존재가 있었습니다. 그곳에 있을 때 잠시나마 가졌던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불평, 간간히 어머니 맘을 아프게 하고 가슴속을 멍들게 했던 불효한 말과 행동들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어머니. 지금에 와서 개인적 명예와 부, 성공을 누리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 인생의 참된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어머니와의 상봉의 날을 앞당기는 심정으로 미약하나마 평화와 통일, 민족의 번영과 밝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렵니다. 비록 보잘것없는 일개인에 불과하지만 저를 통하여, 저희의 삶을 통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통일을 소망하고 통일의 당위성을 확신할 수 있게 통일 예행자, 선구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렵니다.     


그리움으로 써내려갔지만 전하지 못한 이런 편지들이 지금 제게는 어릴 적 어머니가 드시던 아픈 매가 되고 어머니가 하시던 타이름을 대신하고 있답니다. 이 편지 또한 번번이 “작심삼일”, “3일천하”로 끝나고 마는 요란한 결심과 초심의 흔들림을 바로잡아줄 채찍입니다. 그리고 바른 길에서 탈선하지 않으려는 스스로의 주문과 어머니께 드리는 이아들의 다짐입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그만큼 새벽은 더 가까이 와있습니다. 


간절히 원하면 그 소망이 꼭 이루어진다지요? 부디 희망의 끈을 놓지 마시고 다시 만나게 될 통일의 그날 가슴속에 쌓였던 이별의 아픔과 한을 한꺼번에 날려 보낼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어머니를 향한 이아들의 그리움엔 끝도, 바닥도 없습니다. 그곳에서는 쑥스러워 가슴속에만 품고 한 번도 어머니께 해드리지 못했던 말, 이 밤에는 북녘하늘을 향해 있는 힘껏 외쳐 봅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고 또 언제까지나 어머니의 사랑스러운 아들이고 싶은 00 올립니다.              

2013년 4월 20일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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