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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6.25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의 오판

그곳에서 6.25는 '북침'이었다

by pine

한국에 와서 살면서 나는 6.25전쟁의 진실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됐다. 김일성이 6.25전쟁을 왜 일으켰는지는 이미 많은 학자들과 역사가들에 의해 밝혀졌다. 또 김일성이 왜 오판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 자료들이 나와 있다. 김일성이 6.25전쟁을 벌일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때문이지만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공명심이다. 별로 한 일도 없이 소련의 지원에 힘입어 젊은 나이에 북한을 통치하게 되었지만 김일성은 자격지심이 컸을 것이다.



박헌영, 김책, 무정, 최용건, 김두봉 등 쟁쟁한 공산주의, 빨치산 선배들이 김일성의 경력에 대해 다 알고 있는데 중학교 중퇴의 김일성은 조바심이 났을 것이다. 뚜렷한 업적을 남기고 싶어서 말이다. 그때 마침 중국 공산당이 장개석 국민당군을 중국대륙에서 몰아내고 중국을 공산화 했다. 그리고 거듭되는 김일성의 간청에 스탈린과 모택동은 무기지원과 병력지원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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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6.25전쟁 전까지 소련은 막대한 군수물자와 무기를 지원했고 모택동은 국공내전에서 전투력이 검증된 조선족 사단을 김일성에게 넘겨주었다. 조선족 사단들은 6.25전쟁의 최선봉에서 서서 우리 국토와 국군, 그리고 국민들을 무참하게 유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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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외정책도 김일성이 6.25남침을 일으키는 오판에 한 몫 했다. 미 국방 장관인 애치슨이 1950년 l월 태평양에서의 미국 극동 방위선을 한국과 타이완을 제외한 알류샨 열도-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으로 정하면서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하게 됐다. 김일성은 전쟁을 일으켜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거나 개입하더라도 속전속결해서 미 증원군의 한반도 투입 전에 적화통일을 완수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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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불붙는데 기름 붓는 격으로 박헌영의 호언장담도 한 몫 했다. 북한군이 남침을 개시하면 남로당 20만 명이 후방에서 봉기를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당시 북한군 병력이 20만 명이었는데 남로당 20만이 배후에서 봉기까지 일으킨다면 적화통일은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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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박헌영이 미제의 고용간첩으로 몰려 처형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 호언장담 때문이기도 했다. 전쟁 실패의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정적을 제거하기에 이것만큼 좋은 구실도 없었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전후 여러 차례 박헌영의 말을 믿고 남조선에 나갔는데 북한군의 진격에 호응하는 남로당 세력이 하나도 없었다며 분개했다. 참으로 책임전가의 달인다운 모습이었다. 오판의 최종 책임자는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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