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의 어느 밥집 이야기
잊을 수 없는 추억은 모든 감각을 담고 있다.
추운 겨울날, 엄마가 아랫목에 미리 깔아둔 요 밑에 들어가 뜨끈하게 배를 지지며 귤을 먹던 기억. 땀이 날 정도로 뜨거운 아랫목과 묵직하고 푸근한 요의 무게감, 부들부들한 귤의 촉감과 상큼달달한 맛, 귤즙으로 노랗게 물든 손 끝의 시큰함과 그 찌르는 듯한 향기. TV에는 어김없이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가족오락관이나 가요무대가 틀어져 있곤 했다.
신입생 시절 대학교 앞에 있던, 사람이 들어가 개가 나온다는 개골목의 추억. 찌개 안주가 보글보글 끓는 소리와 온갖 안주가 뒤섞여 나는 냄새, 덜덜덜 돌아가는 선풍기의 미지근한 바람이 정수리를 스치는 감촉, 개강총회를 온 옆 테이블의 건배사, 쉴새 없이 잔 부딪히는 소리, 싸한 옛날 참이슬의 목넘김. 그 때는 실내 금연도 아니었으니 눈이 매캐할 정도로 들어찬 담배 연기는 덤이었다.
눈을 감으면 타임 워프 하듯이 그 시공간으로 날아가게 되는 추억들. 시야, 소리, 냄새, 맛, 감촉까지- 어쩜 이리도 세세하게 다 기억이 날까 싶은 추억들이 있다. 언젠가는 그런 생생함이 되려 아프고 고통스러워 잊으려고도 했다. 잊으려고 지우려고 부단히 노력하길 몇년이었을까.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온몸에 각인된 추억은 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름 휴가를 갔다가 귀국하는 여정에 이스탄불을 10시간 가량 경유하게 됐다. 친구에게 이스탄불은 내 손바닥 안이라며, 내가 10시간 알차게 데리고 다닐테니 걱정 말라고 큰 소리를 빵빵 쳤다. 내가 눈 감고도 우리 동네처럼 돌아다닐 수 있는 도시가 3군데 있으니 바로 카이로, 하노이, 그리고 이스탄불이다. 주요 관광지는 물론 동네 백수처럼 어슬렁 거리던 골목골목까지 이스탄불은 그야말로 지도를 그릴 수 있을만큼 익숙한 도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다. 이스탄불을 갔던 건 2011년. 무려 6년 전의 일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것도 옛말이다. 대도시는 1년만 지나도 수많은 풍경이 바뀌곤 한다. 풍경이 바뀌지 않았더라도 이른바 '추억필터'로 점철된 내 기억속의 이스탄불은 점점 그 윤곽이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조각조각의 아름다운 추억들만 이어붙인 모자이크처럼, 블러 효과를 과하게 넣은 후보정 사진인 것처럼.
10시간이래봤자 출입국 수속하는 시간, 시내 왕복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5~6시간 정도였다. 그 시간이면 몇몇 랜드마크만 슥 훑어봐도 충분할테니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들을 활용하면 된다. 굳이 나의 이스탄불 경험을 끄집어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가려고 하는 곳은 아야소피아 성당이나 그랜드 바자르 같은 거대한 랜드마크들이 아니었다. 6년 전 그 시절 나의 아침 해장과 점심과 저녁을 책임져 주던 작은 동네 맛집. 그 추억의 맛집을 다시 한번 가고 싶었다.
관광객들 사이에서 유명한 식당이 아닌데다 가게 이름도 기억나지 않아서 인터넷 상에서는 정보를 찾을 수가 없다. 기억 나는 건 대략적인 위치와 가게 인테리어 뿐. 그 '대략적인 위치'를 스트리트 뷰에 찍어서 보니 이 집인 것도 같고 저 집인 것도 같고 그 옆골목에 있는 집인 것도 같아 불안했다.
"그 근처만 빙빙 돌다가 식당을 못 찾으면 어쩌지? 맞는 집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다른 집이면 어떡하지? 벌써 6년 전인데 문을 닫은 건 아닐까? 애초에 이렇게 기억이 흐릿한 집을 추억이랍시고 찾아가는 게 맞는 일일까?"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내가 언제 또 이스탄불을 갈 기회가 생길까. 이 참에 가지 않으면 영원히 못 갈 수도 있다. 길을 헤메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부딪혀 보기로 했다. 이번에도 친구에게 "거긴 진짜 맛집이니까 나만 믿고 따라와!" 라며 큰소리를 빵빵 쳤으니 만약 못 찾거나 맛이 없으면 욕을 바가지로 먹을 게 뻔했다. 그래도 가야만 했다. 못 가고 평생 후회하는 것보다는 욕 먹는 게 나으니까.
처음 아타튀르크 공항 (이스탄불 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난관에 봉착했다. 6년전에는 지하철 탈 때 토큰을 넣어야 했는데 언제 충전식 교통카드 따위로 바뀐거지? 지하철을 타고 1시간 가량 시내로 이동하면서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꿈에 그리던 이스탄불을 다시 찾았다는 설렘은 온데간데 없고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과 걱정만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모든 걱정은 술탄 아흐멧 광장에 도착하는 순간 거짓말같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선명한 영상처럼 모든 기억이 되살아났다.
2011년 5월 4일 밤, 술탄 아흐멧 광장 트램 정류장.
20대의 나는 15kg 가 족히 넘는 거대한 배낭을 짊어지고 트램에서 내렸다. 보슬비가 내리던 그 날 밤의 기온은 약 10도. 몇시간 전만 해도 20~25도 가량의 따뜻한 카이로에 있던 나는 짐짓 몸을 움츠리며 숙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광장으로 향하는 낮은 계단을 터덜터덜 내려가자 왼쪽 편으로 믿을 수 없는 풍경이 나타났다. 조명을 환하게 밝힌 한밤중의 아야소피아 성당이었다.
주변 모든 것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압도적인 아야소피아의 야경. 살짝 입김이 나오는 시린 날씨와 차게 식은 손가락 끝의 감촉. 머리카락 위로 부서지던 부드러운 빗방울. 비오는 날 특유의 흙비린내. 그리고 완벽한 정적. 이스탄불 관광의 시작이자 끝인 술탄 아흐멧 광장은 항상 여행객으로 북적거리지만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한밤중의 광장에 살아 숨쉬는 것은 나뿐이었다.
되살아난 기억에 한껏 들뜬 나는 익숙한 술탄 아흐멧 광장을 지나 옛날에 묵었던 숙소 쪽으로 향했다. 광장을 벗어나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자 익숙한 풍경이 꽉 들어차있다. 아, 저 여행사. 저 식당. 저 기념품 가게. 저 간판도 기억이 나고 저 지붕도 기억이 난다. 맞아, 이 골목으로 들어가면 옛날 숙소가 있었지. 여기서 우측으로 들어가면 그 슈퍼가 있었고. 몇걸음만 더 가면 그 밥집이 나올 것이다.
맞다. 여기다.
기억이 되살아나니 식당까지 찾아가는 건 일도 아니었다. 마치 동네에 놀러온 친구를 데리고 집 앞 맛집에 가듯 한번의 망설임도 없이 목적지에 안착할 수 있었다.
그 때 당시에도 이미 오래 됐었던 식당은 지금도 별로 변한 게 없다. 그 때와 같은 벽지, 같은 식탁, 같은 의자에 같은 메뉴판. 항상 내가 앉던 자리에 앉자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마저도 똑같다. 하긴 관광지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위치한 현지인들 대상의 밥집이니 딱히 트렌드에 맞게 변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무심히 자리를 지키며 동네 주민들의 식사를 책임져 왔을 밥집. 그래서일까. 꼭 오랜만에 찾은 고향의 백반집에 온 것 같았다.
메뉴도 한국으로 치자면 백반이나 마찬가지인 것들이다. 특별한 요리나 만찬이 아니라 '터키 사람들은 집에서 이런 걸 먹겠구나' 싶은 음식이다. 백반집 중에서도 조미료를 잔뜩 넣어 입맛을 돋구는 게 아니라 정말 엄마밥 같이 담백하고 질리지 않는 밥집들이 있지 않은가. 이 곳은 그런 의미의 터키 밥집이었다.
터키식 렌틸콩 수프인 초르바. 부드럽고 구스한 수프에 레몬을 살짝 짜고 고춧가루를 탁탁 뿌려넣으면 그만한 속풀이 음식이 없다. 밤이면 밤마다 배낭 여행자들과 터키 맥주 에페스로 내달린 다음, 아침이면 꼭 이 곳에 와서 초르바로 해장을 하곤 했다. 뜨끈-하고 부드러운데다 고춧가루의 칼칼함까지 더해지면 술이 깨는 건 물론 하루를 시작할 기운까지 얻을 수 있었다.
한 푼이 아깝던 장기 배낭여행자 시절엔 꿈도 못 꾸던 비싼 믹스 케밥. 기껏해야 비프나 치킨 케밥을 시켜먹곤 했으니 따지고 보면 믹스 케밥은 처음이다. 간이 삼삼한 필라프와 시큼한 샐러드, 싱싱한 토마토는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으면서도 본연의 맛이 살아있어 케밥과 잘 어우러진다. 그리고 적절히 섞여 있는 치킨, 비프, 램 케밥. 원래는 닭고기보다 소고기, 소고기보다 양고기 파지만 케밥만큼은 치킨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다. 쫄깃한 육질의 치킨 케밥을 입에 물었을 때 은은하게 퍼지는 향신료의 맛을 느껴본 사람들은 대체로 동의할 것이다. 이 향신료에는 부드러운 소고기나 누린내나는 양고기보다는 역시 닭고기가 제일 잘 어울린다.
두름 케밥은 친구의 선택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롤 형태의 케밥이지만, 현지 케밥이 다른 점이라면 빵이 꽤 두껍고 생각보다 내용물이 적다는 것이다. 튀김옷 두꺼운 튀김같은 걸 상상한다면 큰 오산이다. 적지만 알찬 내용물과 그 맛을 한번 보는 순간 한국에서 먹은 케밥에 적잖은 배신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초르바부터 먼저 한 입 먹자 그립던 맛과 질감이 입 안에서 맴돌아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 맛이다. 숙취에 모든 걸 게워내고 반시체로 죽어있던 나를 살려내던 마법의 수프, 한국에서 찾아보려 했지만 도무지 같은 맛이 나지 않던 초르바를 드디어 다시 만났다.
초르바를 시작으로 믹스 케밥과 두름 케밥까지 그 맛이 예전과 전혀 다름이 없었다. 하긴 여긴 엄마 집밥 같은 음식을 하는 곳이니까. 엄마 손맛이 6년만에 바뀐다면 그것도 웃긴 일이다.
피곤해서 입맛이 없다던 나와 친구는 순식간에 접시를 깨끗하게 비워냈다. 내 만족감은 두말 할 것 없고, 친구도 오랜만에 푸짐하고 든든하게 먹었다며 좋아해 주니 마음이 뿌듯했다.
식사를 마친 뒤 차이 (터키식 홍차)를 한잔 들고 테라스로 나와 앉았다. 담배를 입에 무니 주인 아저씨가 무뚝뚝하게 재떨이를 툭 놓고 간다. 무심한 듯한 그의 친절이 고마웠다. 나는 테라스 테이블에 앉아 담배 한 모금, 차이 한 모금을 번갈아 마시며 가게 앞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노곤노곤하게 따뜻한 햇살과 눈이 시리게 파란 하늘, 과자 따위를 사러 가곤 했던 작은 구멍 가게, 아랍풍의 노래를 빵빵하게 틀어놓고 좁은 골목길을 달리는 낡은 차, 아직까지도 입 안에 맴도는 케밥의 맛과 적당한 포만감, 딱딱하지만 묘하게 편한 의자, 쓰디쓰고 달디단 터키식 차이의 맛과 향, 치지직- 담배 타들어가는 소리와 눈 앞을 어지럽히는 연기, 터키 특유의 강하지 않고 구수한 향신료 냄새, 아무 생각도 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
자고 일어나면 바뀌어버리는 세상이건만 이 곳은 전혀 변한 것이 없다. 풍경, 소리, 날씨, 냄새, 감촉, 분위기, 맛- 그 어느 하나 달라진 것 없이 그 시절 그대로였다.
지금이 2017년인가. 혹은 내가 6년간의 꿈을 꾼 것이고 나는 2011년의 이스탄불에 앉아 있는 것일까.
멈춘 듯 흐르는 이스탄불의 시간 속에서 나는 새삼 변하지 않음에 감사했다. 6년이라는 세월을 무색하게 만드는 이 일관성이 참으로 오랜만에 가슴을 설레게 한다.
어떤 것들은 변해서 아름답지만,
어떤 것들은 변하지 않기에 빛을 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