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일지 (7)
작업용 인스타그램 계정에 잠깐의 휴식을 주기로 했다. 사실 나에게 한숨 돌릴 틈을 주기 위함이다. 지인들의 소식을 보기 위한 개인 계정은 팔로잉/팔로워가 100명 남짓이다. 그곳에 사진을 올리는 횟수는 몇 개월에 한 번 정도? 나에 대한 조각을 “전시”하는 것이 딱히 나의 구미를 당기지 않을뿐더러 내가 잘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위해서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소셜미디어 계정을 가지고 스스로를 홍보해야 한다는 풍조 때문에 등 떠밀리듯 3년 전쯤 작업용 계정을 만들었다. 지난 3년 동안 내 그림을 불특정 다수가 보는 플랫폼에 전시하는 것이 나에게 득이었을까 실이었을까.
좋든 싫든, 순수예술과는 다르게 일러스트레이션은 상업용 그림이라는 것이다. 말인즉슨 내가 하고 싶은 작업만 할 수 없고, 클라이언트/대중이 원하는 무언가를 창조해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인스타그램은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최적합인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그림을 올리는 즉시 바로바로 사람들의 “반응”을 볼 수 있으니깐. 하지만 요즘은 이러한 반응에 대해서 굉장한 회의감이 들었다. 학교를 다닐 때 나보다 경험이 훨씬 많은 튜터들이 내 그림을 평가해 줬던 것처럼, 이런 반응들이 과연 내 그림을 진지하게 평가해줄 수 있는 어떠한 지표가 될 수 있을까? 물론 말은 “당연히 아니지! 그냥 좋아요 숫자일 뿐이야.”라고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포스팅을 하는 즉시 바로바로 찍히는 숫자를 보다 보면 이건 단순한 기호를 넘어 일종의 점수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성적표는 성적표인데, 그 누구에게도 인증되지 않은 성적표이다. 왜냐면 좋아요 같은 건 정말 아무나 누를 수 있기 때문이지. 나만 해도 다른 사람들의 포스팅을 보고 ‘좋아요’를 누르는 건 그 게시물이 딱히 좋아서라기보단 내가 그들의 지인이기 때문일 때가 많다. 이만큼 이 하트는 참 의미가 없다. 그런데 이 옆에 찍혀 있는 숫자가 마치 내 그림의 가치를 나타내는 것만 같다는 생각을 왜 떨치기 힘들까?
학교를 3년 동안 다니면서 딱히 내 그림 스타일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분명 내 그림이 항상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와는 별개로 나에게는 나만의 뚜렷한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졸업을 한 후 넘쳐나는 시간 속에 이전에는 해보지 못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며 오히려 내 그림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물음표가 생겨버렸다. 전에는 이정표가 한두 개 정도였다면, 지금은 마치 매 갈림길마다 내 앞에 보이는 이정표가 열 개는 되는 듯하다. 이 때문에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해 자신이 더욱 없어졌다고 하면 말이 되려나? 너무 추상적으로 말하는 것 같아 예를 들어보자면, 전에는 손으로 하는 작업을 많이 했는데 요즘은 디지털 작업을 더 많이 해보려고 하는 중이다. 디지털 작업이 여러모로 편리하기도 하고 접근성도 좋아서. 그런데 디지털 작업을 해보니 이전에 내가 손그림을 그릴 때랑 그 간극이 되게 컸다. 내가 손으로 그릴 때 가지고 있던 좋은 것들이 디지털로 작업을 하니 다 죽어버리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민물고기를 바다에 풀면 죽고 vice-versa인 것 같은 기분.
뭔가 내가 낳긴 낳았는데 내 자식 같지 않아. 얘는 뭐지? 왜 이러고 생겼지? 재료를 다르게 쓰니깐 거기서 올 수밖에 없는 단점인가 싶었지만 이를 극복하고자 계속 그리고 또 그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마침내 내 마음에 조금은 들 정도의 작업을 완성했다.
‘그래도 얘는 좀 내가 만든 것 같네.’ 이렇게 뿌듯한 마음을 가지고 어딘가에 전시를 했는데 반응이 생각한 것만큼 없으면 쉽게 울적해진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게 딱 이럴 때 쓰는 말인 것만 같이. 아이러니한 것은 딱히 내 마음에 드는 그림이 아니면 사람들의 반응이 좋아도 별로 기쁘지 않다. 그런데 내 마음에는 쏙 드는 그림이 사람들에게 반응이 없으면 그림과 내 자신의 능력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다는 점이다. 내 마음에 들면 사람들의 반응이 어떻든 오히려 상관없는 것 아닌가.
과도기를 거쳐가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이런 종류의 무대와 숫자가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잠시 동안 떨어져 있기로 했다. 직업 특성상 어느 정도 입지를 다질 때까지는 공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긴 하지만, 내가 자신에 대한 확신을 더 가지고 다른 사람들의 하이라이트와 나의 low point를 같은 선상에 두고 비교하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 때 돌아가도 늦을 게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금 겪어가는 이런 과정들이 후에 좋은 밑바탕이 될 거라는 나름 긍정적인 믿음도 있다. 미래에는 이런 소셜미디어가 없을 수도 있지만, 내가 원하는 작업과 사람들이 원하는 작업의 교차점을 찾는 것은 아마도 나의 평생 숙제일 테니까.
다른 사람의 기준보다 내 기준을 우선시하자는 게 나름 이 글의 주제이니, 내가 가장 애정 하는 <초상화를 모으는 여자>의 페이지로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