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벌판을 달리며 떠오른 마음
선양에서 요령성 링 위안시까지 360여 km.
버스는 먼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또 달린다.
창밖으로는 늦가을의 벌판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추수가 끝난 들판은 한없이 황량하고,
멀찍이 군락을 이룬 미루나무들은
이미 모든 잎을 떨군 채 마른 가지만 바람에 흔들린다.
그 사이사이에는 까치집이 군데군데 박혀 있다.
몇 시간을 달려도 풍경은 변하지 않는다.
그 광활함과 적막함 속에서
문득 ‘만주벌판’이라는 이름이 떠오른다.
한때 우리 민족의 삶과 역사,
기개와 눈물이 고스란히 켜켜이 쌓였던 곳.
고조선이 숨 쉬고, 고구려의 기상이 솟구치고,
발해의 웅혼함이 땅속에 잠들어 있던 곳.
그리고 일제강점기에는 무수한 독립운동가들이
삶을 걸고 싸웠던 피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 모든 역사가 바로 이 넓은 벌판 위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 땅’이라는 이름 아래
그 흔적들이 묻히고,
심지어는 중국의 동북공정 속에서
우리의 찬란한 기록들이 왜곡되고 지워지고 있다.
창밖의 들판을 바라보며
가슴 한쪽이 먹먹해져 온다.
사라져 버린 땅 때문이 아니라,
잊혀가는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벌판 가장자리의 미루나무에 시선을 돌린다.
까치집을 하나 둘 세어보지만
생각이 자꾸 옛 땅으로 흘러
몇 개를 세었는지 금세 잊어버린다.
버스는 묵묵히 앞으로만 달리고,
나는 창밖의 만주벌판 위에서
우리의 사라진 영토와 감춰진 역사를 떠올리며
묵직한 마음을 조용히 곱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