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차_인천 → 선양 → 링위안
새벽 공기의 서늘함을 접어 쥐고 인천국제공항에 모였다. 우리 일행의 목적지는 중국 요령성 링 위안 시. 선양 타오셴(桃仙) 국제공항에 내려 느릿느릿 진행되는 입국 수속을 통과하니, 신랑 측이 보낸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는 곧바로 서쪽, 링위안으로 머리를 돌렸다. 차창 밖으로 만주벌판이 길게, 아주 길게 펼쳐졌다. 추수를 막 끝낸 황갈빛 들판 위로 키 큰 미루나무가 바람을 가르고, 잎을 털어낸 가지 사이사이 까치집이 검은 점처럼 놓였다. 이 일대가 한때 고구려의 세력이 미치던 곳이었고, 발해의 숨결도 오가던 경계였다는 생각이 들자, 역사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 새삼 묵직해졌다.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숨 가쁘게 싸우던 독립투사들의 기억 또한 이 벌판 어딘가에 배어 있을 것이다. 미루나무와 까치집이 그 이야기를 알고 있을까.
6시간을 흔들리며 달려 도착한 링위안. 신랑과 친구들이 환하게 우리를 맞았다. 신랑 얼굴엔 말 그대로 ‘행복의 꽃’이 만개. 호텔 체크인 후 짐만 놓고 다시 로비에 모였다. 4층 별관 레스토랑 식탁마다 링위안의 전통요리가 정갈하게 세팅되어 있고, 도수 높은 중국 백주는 의외로 목 넘김이 깨끗했다. 한국에서 온 하객들과 신랑 집안이 뒤섞여 건배를 주고받는 사이, 전야제의 온도는 금세 끓는점에 닿았다.
2차는 신랑이 준비한 ‘프러포즈 파티’. 꽃과 풍선으로 꾸민 2층 노래방 파티홀, 안주·맥주·와인·위스키가 차례차례 올라왔다. 곧이어 신랑·신부가 입장. 신랑은 한쪽 무릎을 꿇고 정식으로 청혼했고, 우리는 환호와 박수로 두 사람을 감쌌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잠깐, 시간의 환상 속에서 내가 주인공이 되는 기분. 노래와 춤, 덕담이 이어지고 신랑은 오늘까지만 총각이라며 웃었다.
2일 차_전통 혼례의 아침
토요일 새벽 5시, ‘신부 맞이(迎亲)’를 보기 위해 일행들이 로비에 모였다. 꽃 장식 차량 뒤로 같은 엠블럼의 고급 승용차가 길게 줄을 잇는다.
호텔 4층에서 신랑이 신부를 맞는 의식을 치르고, 하객들은 붉은 장미 한 송이씩을 건네며 축복을 더했다.
붉은 수가 촘촘히 놓인 전통 복식의 신부가 검은 망사 턴으로 얼굴을 가리고, 꽃가마 대신 꽃으로 수놓은 승용차에 오른다. 동네 입구에 들어서자 새벽 공기를 가르며 축포가 터진다. 시댁 현관까지 붉은 비단 천이 깔리고, 신부는 부모님께 술을 올린다. 술을 받아 마신 후 부모님은 붉은 봉투를 건네며 덕담을 전한다. 수천 년 이어진 *육례(六礼)*의 현대적 변주—예물과 절차는 시대에 따라 달라졌어도, ‘두 집안이 하나가 된다’는 핵심은 여전했다.
오전 11시, 정식 예식. 은은한 조명과 음악, 테이블마다 산해진미가 차려진 홀은 한국 예식장과 결이 조금 달랐다. 깔끔한 예복의 신랑과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입장하고, 주례·성혼선언·반지 교환으로 이어진다. 신랑 아버지의 축사가 울려 퍼지고—비록 우리는 모든 문장을 알아듣진 못했지만,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함께하라’는 축원의 결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사회자는 한국 하객 대표에게도 축사를 청했고, 번역이 이어지자 박수는 장내를 꽉 채웠다.
신랑신부의 행진으로 예식은 끝났지만, 테이블 위 음식의 기세는 쉬이 꺾이지 않았다. 접시가 비어도 다시 채워졌고, 잔이 비면 금세 메워졌다. ‘이런 예식은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스치다가도, 신랑·신부가 테이블을 돌며 수줍고 환한 미소로 인사할 때면 모든 잡념이 거둬졌다. “두 사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부가 돼라”—우리는 마음으로 또 한 번 건배했다.
저녁엔 링위안 전통 샤부샤부로 마무리. 쇠고기·양고기·닭고기·오리고기, 각종 해산물과 채소, 소스가 끝없이 올라왔다. 신랑은 모자라면 뭐든 더 시키라며 우리를 챙겼다. ‘제대로 대접받는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것이리라.
귀환길_안개를 가르며 선양으로
오후 6시, 링위안을 떠나 선양으로 복귀. 6시간 거리라 하니 마음이 바빠진다. 고속도로엔 짙은 안개가 내려앉아 시야가 한 치 앞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버스는 살얼음판 위를 걷듯 더디게 나아갔다. 기사님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고, 우리는 말없이 창밖만 바라보았다. 다음 날 1시경, 마침내 선양 공항 인근 호텔 도착. 체크인을 끝내고 ‘아침 로비 집결’만 확인한 뒤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3일 차_선양 북릉(北陵) 산책과 귀국
아침 식사 후 버스를 타고 선양 북릉으로 향했다. 이곳은 청(淸) 태종 *홍타이지(皇太極)*의 능, *소릉(Zhaoling, 昭陵)*이 자리한 곳으로, 울창한 숲과 호수, 궁문과 신로(神路)로 이어지는 장대한 공간 감각이 인상적이다. 흙으로 덮인 봉분과 소박한 초목은, 웅대한 석축과 대조를 이루며 묘하게 ‘숨 쉬는 능’을 만든다. 입구 공원에선 시민들이 기예를 뽐내고, 바둑·태극권·댄스를 즐긴다. 여행은 유적만이 아니라, 그곳의 일상 풍경을 보는 일이라는 걸 북릉은 다시 일깨워준다.
관람을 마치고 코리안타운 서탑가로 이동, 전골·해물부침·계란말이·소고기구이와 소주로 ‘한국식 작별 식사’를 했다. 배를 두드리며 공항으로 이동하는 길, 선양의 낯익은 풍경들이 창밖으로 흘렀다. 짧지만 밀도 높은 여정의 마지막 컷.
여행자 메모_현지 역사 한 줌
고구려·발해의 무대, 요동과 만주: 요령성 일대는 한반도와 중국 동북의 경계이자 통로였다. 고구려가 압록강을 넘어 성장하던 시기, 요동은 전략의 핵심지였고 발해 또한 만주·연해주 일대를 아우르며 북방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오늘날 국경선과 상관없이, 고대사의 무대가 광활한 초원과 산맥에 걸쳐 있었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체감하게 된다.
만주벌판과 독립운동: 20세기 초 만주 일대는 항일무장투쟁의 후방 기지였다. 지린·랴오닝·헤이룽장 곳곳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이동하며 활동했고, 조국 독립을 향한 발자취가 숱한 고개와 하천을 건넜다.
선양 북릉(昭陵): 청 태종 홍타이지(재위 1626~1643)의 능으로, 베이징 외곽의 동·서청릉과 더불어 청 왕조 황릉 체계를 이루는 핵심 유적이다. 후금에서 청으로의 개칭, 팔기(八旗) 체제 정비, 한족 관료제의 수용 등 ‘변방 정권’이 ‘제국’으로 넘어가는 관성의 무게가 서려 있다.
마무리
이 여정은 ‘의식(儀式)’과 ‘기억(記憶)’을 한 바구니에 담아 돌아오는 길이었다. 전통 혼례의 예법은 현대적 장치와 결합해 더 우아해졌고, 만주벌판의 바람은 오래된 역사 위를 스쳐지나 현재의 사랑을 축복했다. 꽃으로 수놓은 자동차 행렬, 새벽 공기를 흔든 축포, 붉은 봉투와 절, 산해진미와 건배, 안개 낀 고속도로와 피곤이 스민 호텔 침대—이 모든 장면이 포개져 한 편의 필름이 되었다.
돌아와 보니, 우리의 가슴에도 장미 한 송이가 꽂혀 있다. 이름은 간단하다. 축복. 그리고 다음 페이지의 제목은 이미 정해져 있다. 다시, 길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