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측통행 근육기억이 부른 지하철 해프닝

by 비움과 채움

서울 지하철 4호선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던 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몸이 이끄는 대로 걸었다.

평생 쌓인 우측통행의 본능이 “이쪽이야!” 하고 나를 플랫폼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플랫폼이 정반대 방향이었다는 것.


순간 어리둥절했다.

“어? 왜 열차가 없지?”

두어 번 눈을 비비고 나서야 번쩍 떠오른 진실.

“아… 그렇지. 1호선은 좌측통행이지!”


그제야 내 안의 방향 더듬이가 고장 난 이유를 깨달았다.

사실 예전엔 좌측통행이 강조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통행 원칙이 우측통행으로 바뀌었다.

그 후로 내 더듬이는 우측통행만을 열심히 학습하며

“앞으로는 무조건 오른쪽이야!”라는 신념을 갖고 성실하게 살아왔다.


그래서 오늘 같은 해프닝은 불가피했다.

평생 쌓인 우측통행의 근육기억이

1호선의 좌측통행 역사 따윈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른쪽!”만 외치며 날 데리고 간 것이다.


생각해 보니 이 혼란은 역사적 사연도 있다.

1호선은 일본식 좌측통행,

4호선을 포함한 이후 노선은 미국식 우측통행.

이렇게 서로 다른 문화가 서울 지하철 한복판에서 뒤엉켜

나는 또다시 지하철 미궁에 빠졌다.


표지판을 한 번만 봤어도 됐을 텐데

몸의 기억을 맹신한 죄로

나는 반대 방향 플랫폼에서 비둘기처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나중에야 “지하철을 탓하지 말자”는 결론에 도달했지만,

한편으론 조금 억울했다.

왜냐하면—

너무 성실하게 우측통행을 실천한 내 몸이 원흉이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습관은 몸에 배지만, 방향은 머리로 확인하자.”

그리고 ‘우측통행 근육기억’에게도 살짝 한마디.


“좋은데… 가끔은 좀 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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