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겨울이 자리를 바꾸는 시간, 옷장을 열었다.
막상 걸린 옷들을 바라보니 묘한 생각이 든다.
입은 기억도 가물가물한 옷, 한 번도 손이 가지 않은 옷,
언젠가 입겠지 하며 남겨두었던 옷들이 빽빽하다.
버리기엔 아깝고, 갖고 있자니 불편한 계륵 같은 존재들.
그래도 마음 단단히 먹고 정리해 보자 했는데
손은 앞으로 움직이는데 마음은 뒤에서 붙잡는다.
‘이거 한 번은 입겠지…’
‘이건 좀 값 주고 산 건데…’
하지만 망설임을 털어내고 과감히 골라내니
한아름이 되어 두 팔이 묵직했다.
그렇게 집 앞 의류수거함에 넣고 돌아서는 순간,
왠지 모를 허전함이 스며왔다.
버린 건 옷이었는데, 마음 한 조각도 함께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
그 기세로 책장과 선반까지 손을 댔다.
한참 들여다보니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언젠가 써야지’ 하며 쟁여 놓은 물건들이,
쓰지도 않으면서 끌어안고 살았던 물건들이,
그야말로 ‘욕심껏’ 모아둔 잡동사니들이.
누군가 말했듯
'1년 동안 손이 안 간 물건은 이미 내 것이 아니다.'라고.
그 말이 이렇게 가슴에 와닿을 줄 몰랐다.
집에 들일 땐 금덩어리처럼 반짝이던 물건들이
시간이 지나자 똥보다도 못한 짐이 되어 있었다.
그때 떠오른 말 하나
석인성시(惜吝成屎).
아끼고 아끼다가 결국 똥이 된다는 뜻.
버리지 못한 미련, 쌓기만 했던 욕심,
언젠가 쓰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가
결국 내 공간을, 내 마음을 꽉 막아버렸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인정하게 된다.
비워내고 돌아본 집은
어제와 똑같은 공간인데 확 더 넓어 보였고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모으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 버리는 것이리라.
그러나 버림은 손해가 아니라 내 삶을 되찾는 일이었다.
옷장 앞에서 시작된 작은 결단이
나를 비우고 채우는 연습이 된 하루였다.
새 계절을 맞는 일은
바람이 바뀌는 것만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내 안의 묵은 것들을 털어내고,
새 자리를 내어주는 것
그것 또한 계절의 교대처럼 필요한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오늘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석인성시, 아끼다 똥이 되기 전에,
과감히 버리고 가볍게 살아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