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새벽 문을 나서다 아직 잠이 덜 깬 골목에서 신문배달원과 마주쳤다.
자전거 짐칸에는 신문이 산처럼 쌓여 있고, 그는 수십 부를 세어 들고 익숙한 발걸음으로 우리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해는 아직 멀었는데, 이마에는 벌써 땀방울이 맺혀 있다. 새벽은 언제나 부지런한 사람들의 삶의 현장이다.
그 모습을 보자 문득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나도 한때 새벽을 먼저 만나는 아이였다. 아직 별빛이 남아 있는 시간, 보급소 앞에 모여 신문을 나눠 받았다.
신문을 옆구리에 잔뜩 끼고 골목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하면, 신문의 무게에 몸이 쏠리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무게가 싫지 않았다.
그날 하루의 의무와 대가를 함께 짊어지고 있다는 기분이 오히려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골목을 돌며 “신문이요” 하고 외치면 어둠 속에서 하나둘 불이 켜지고, 문이 살짝 열렸다.
신문을 기다리던 어른들이 계셨다.
어떤 집에서는 늘 따뜻한 말로 응원을 건네주었고, 어떤 집에서는 신문이 조금 늦었다며 투덜대기도 했다. 그 모든 반응이 어린 나에게는 세상과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즐거움도 많았다.
남들보다 하루를 먼저 시작한다는 뿌듯함, 월급 받는 날이면 주머니가 묵직해지는 기분, 배달을 마치고 학교로 향할 때 느끼던 은근한 우월감. 새벽 공기를 독차지한 채 달리던 골목은 그 시절 나만의 놀이터였다.
물론 애로사항도 적지 않았다.
비 오는 날은 늘 난감했고 배로 힘들어 녹초가 되곤 했다.
신문이 젖지 않게 비닐을 몇 겹으로 싸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눈 오는 날에는 숱하게 미끄러져 넘어졌고, 분명 신문을 넣어두었는데 안 왔다며 따지는 집도 있었고, 눈앞에서 누군가 남의 신문을 집어 들고 사라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본 적도 있었다..
그래도 까다로운 항의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은 길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먼저 고개를 숙일 줄 아는 나이였으니까.
그 시절에는 신문을 돌리는 학생이 많았다.
새벽 노동은 고됐지만, 이상하게도 부끄럽지 않았다.
신문은 세상을 읽는 거의 유일한 창이었고, 우리는 그 창을 나르는 사람들이었다.
새벽에 신문을 돌리고 아침에 학교에 가는 일은 자연스러웠고, 누구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은 어떨까.
이제 학생이 신문을 배달한다는 것은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새벽 노동은 위험하다고 여겨지고, 학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도 붙겠지만,
팩트는 신문을 기다리는 집 자체가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뉴스는 스마트폰 속에서 먼저 깨어나고, 종이신문은 서서히 자리를 내어주는 시대가 되었다.
지면 신문은 간신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신문을 배달하던 학생들의 풍경은 이미 끊어졌다.
그 자리를 이제는 중장년의 배달원들이 메우고 있다.
학생이 세상을 나르던 시대에서, 세대가 묵묵히 버티는 시대로 바뀐 셈이다.
오늘 마주한 배달원은 예순은 훌쩍 넘어 보였다.
잠시 말을 나누다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은 새벽 오토바이 소리에도 민원이 들어와 자전거로 배달을 한다고 했다.
조용히 살아야 하는 시대라, 새벽조차 소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신문을 여러 종을 모아 배달하다 보니 더 신경이 쓰인다고도 했다.
신문은 여전히 오지만, 신문을 기다리는 사람은 줄었다.
세상을 읽는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제 뉴스는 손바닥 위에서 즉시 도착하고, 종이는 ‘느린 매체’가 되었다.
전자신문이 대세가 되고, 신문사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를 밀치며 경쟁한다.
활자의 무게보다 클릭 수의 가벼움이 우선되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오늘도 새벽 자전거 위에 신문은 실려있다
배달원은 소리 없이 골목을 돌며 뉴스를 배달한다.
신문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신문을 둘러싼 세대가 바뀌고 있을 뿐이라는 듯이.
신문배달원은 여전히 새벽을 깨우지만,
이제는 소리 대신 땀으로,
외침 대신 페달로,
세상의 변화를 전하고 있다.
어쩌면 신문보다 먼저 사라지는 것은
신문을 기다리던 우리의 아침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