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날이면
나는 늘 한 장면을 먼저 떠올린다.
반짝이는 트리보다,
캐럴송보다,
밤하늘을 가르던 사이렌 소리다.
나는 야간 통행금지를 겪은 세대다.
그땐 밤 12시 정각에 사이렌이 울리면
통행금지가 시작되었고,
새벽 4시에 다시 사이렌이 울려야
도시는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사이렌은 치안 유지와 질서 확립을 명분으로 한
야간 통행금지 제도의 핵심적인 신호였다.
사이렌이 울리면 거리는 텅 비었다.
사람들은 집 안으로 숨었고,
남아 있던 이는 방범대나 경찰에 의해 단속되어
즉결심판을 받았다.
밤은 허락되지 않은 시간이었고,
도시는 늘 긴장 속에 잠들어야 했다.
그런 시대에도
예외처럼 허락된 날이 있었다.
바로 크리스마스였다.
연말연시와 함께
통금이 일시적으로 해제되던 그날,
도시는 갑자기 해방구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때를 손꼽아 기다렸다.
밤새 파티를 즐기고,
억압에서 풀린 해방감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거리를 쏘아 다니며 자유를 만끽했다.
상점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번쩍였고,
캐럴송은 가게마다 흘러나왔다.
거리는 온통 축제의 장이었다.
성탄절 새벽이면
아이들과 청년들이 집집마다 찾아가
찬송가를 부르는 ‘새벽송’이 이어졌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며
노래의 대가로 동전이나 간식, 과자를 받던,
정겹고 따뜻한 풍경이
그 시절 크리스마스였다.
1982년,
통행금지가 전면 해제되면서
그 모든 장면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자유는 일상이 되었고,
크리스마스의 특별함도
서서히 희미해졌다.
오늘날의 크리스마스를 바라보면
이상할 만큼 조용하다.
크리스마스트리는 줄었고,
캐럴송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거리는 썰렁하고,
사람들은 저마다 힘들다고 아우성친다.
한숨 소리가
캐럴송 대신 거리를 출렁인다.
아이러니하다.
그땐 통금이라는 억압 속에서도
크리스마스는 더 뜨거웠고,
지금은 자유로운 시대에
크리스마스가 더 차갑다.
그래서일까.
오늘의 크리스마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옛 시절이 더 생각나고,
그 시절의 크리스마스가
더욱 그리워진다.
사이렌이 멈추던 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기쁨을 향해 걸어가던
그 겨울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