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종소리

by 비움과 채움


해마다 겨울이 오면 거리 어딘가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빨간 냄비를 앞에 두고 묵묵히 종을 흔들던 사람의 손끝에서

겨울은 시작되었다.

그 소리는 연말이 왔다는 신호였고,

세상이 아직 완전히 차갑지 않다는 증거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풍경이 눈에 띄지 않는다.

올해는 유난히도 조용하다.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종소리가 멈춘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걷는 길이 달라졌을 뿐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더 이상 주머니 속 동전을 꺼내지 않는다.

대신 손 안의 휴대전화로 마음을 전한다.

기부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만,

소리는 나지 않는다.

울림은 화면 속에서 조용히 번지고 있다.


거리도 변했다.

예전처럼 아무 곳에나 멈춰 설 수 없는 도시가 되었다.

통행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소음을 만든다는 이유로

종소리는 이제 허락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선의조차 규칙 속에서만 허용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사람도 줄었다.

해마다 종을 흔들던 봉사자들은 하나둘 물러났고,

선행은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길 위에서 종을 흔드는 대신

캠페인에 참여하고,

연결하고,

공유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그래서일까.

거리는 조용해졌고

세상은 더 차가워 보인다.

이제는 그 종소리가 그립다.

겨울 공기 속에서 또렷하게 울리며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하던 그 소리.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

자선냄비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다른 모습으로,

다른 언어로

여전히 겨울을 데우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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