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팥죽

by 비움과 채움

오늘 퇴근길에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동지팥죽 배달시켜 놨으니 잘 먹어.”


짧은 말 한마디였는데,

바로 마음이 뜨거워졌다.

작년 동지에는 내가 팥죽을 보내주었었는데,

올해는 그 녀석이 되돌려준 셈이다.

품앗이란 말이 딱 어울렸다.

녀석의 마음 씀씀이에 저절로 웃음이 났다.


배달된 팥죽을 풀어보니

팥죽 본체 옆으로

냅킨과 동치미,

쇠고기 장조림, 오징어 초무침, 배추김치까지

반찬이 함께 따라왔다.


새알심이 동동 떠 있는 팥죽을

렌지용 그릇에 옮겨 데우고

반찬을 차려 놓으니

한 상이 제법 그럴싸하다.


한 숟가락 입에 들어가니

문득 어릴 적 어머니표 동지팥죽이 떠올랐다.

이런 맛이었을까.

맛본 팥죽은 단맛이 강하다

그 단맛 말고는

분명 옛 팥죽을 흉내 내고 있었지.

텁텁하지만 속을 덥히던 맛,

한 그릇으로 겨울을 건너게 하던 그 맛을.


옛사람들은 붉은팥의 색을

양(陽)의 기운이라 여겼다고 한다.

밤이 가장 길어 음기가 극에 달하는 동짓날,

그 붉은 기운으로

잡귀와 악귀,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자

팥죽을 쑤어

대문에 뿌리고, 장독대에 올리고,

이웃과 나누어 먹었다고 하니

아름다운 풍습 아닌가?


그러고 보면

동지팥죽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건강을 빌고,

안부를 묻고,

함께 겨울을 나자고 손 내미는

나눔의 방식이었다.


그런 마음이었을까.

한 그릇의 팥죽을 앞에 두고 있으니

전화 한 통과, 팥죽 한 그릇이

오늘 하루를 충분히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내년 동지에는

집에서 직접 팥죽을 쑤어

지인들을 초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찹쌀가루로 새알을 빚고,

서툰 손으로 팥을 저으며

올해보다 조금 더 느리게

겨울을 맞이해 보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직 오지도 않은 내년 동지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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