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5년 12월 31일이다.
달력의 마지막 장이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다.
그러나 오늘은
음력 섣달 그믐날이 아니다.
내일은 2026년 1월 1일이지만
병오년 초하룻날이 분명 아니다.
그럼에도 신문과 방송은
마치 내일이 이미 병오년이라도 된 듯
‘붉은말의 해’라는 이름을 앞세워
요란한 제목을 달고 나온다.
아직 오지도 않은 시간을
가불 하듯 끌어다 쓰는 풍경이다.
양력의 새해는
행정과 약속의 기준이 되는 시간이다.
계약이 바뀌고
서류의 연도가 달라지고
달력의 숫자가 넘어간다.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음력의 새해는
계절과 숨결을 따라온다.
달이 차고 기울며
사람의 마음도 함께 준비되는 시간이다.
정월 초하룻날은
기다림 끝에 맞이하는 날이지
미리 떠들어야 할 이벤트가 아니다.
아직 을사년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섣달 그믐날은 40일 이상 더 남아 있고
마무리할 시간도
되돌아볼 여유도 남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자꾸 시간을 앞당기려 할까.
오지 않은 해의 이름을 먼저 부르고
도착하지 않은 의미를
미리 소비하려 할까.
시간은
서두른다고 빨라지지 않는다.
앞당겨 쓴다고
더 풍성해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이
텅 비어버릴 뿐이다.
양력의 새해는
양력대로 맞이하면 된다.
음력의 새해는
달이 차오를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시간은
흐르는 대로 타고 가는 것이지
끌어당겨 쓰는 것이 아니다.
아직
한 해를 더 쓸 여유가 있고,
아직
작별 인사를 다 하지 않았다.
그러니
서두르지 말자.
기다릴 줄 아는 것이
시간을 존중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