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시계는 언제부터 멈춰 서있던 걸까.
초침과 분침, 시침이 각자의 지점에서 서로를 향한 채 굳어 서 있는 시간은
이제 기억의 바깥으로 밀려나 있다.
고장이 나서 멈춘 것이 아니라
필요 없다는 이유로 외면당한 채
서서히 굶어 멈춰 섰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쪽이 서늘해졌다.
그래서 나는 그 벽시계를
‘고장 난 시계’가 아니라
내가 ‘아사시킨 시계’ 구나 생각되었다.
손목에는 늘 시계가 채워져 있고,
스마트폰 화면 속에는 초 단위로 변하는 시간이 떠 있다.
컴퓨터 모니터 구석에도
시간은 늘 친절하게 자리 잡고 있다.
언제든 확인할 수 있는 편리함 속에서
벽시계는 관심의 대상에서 밀려나
방치라는 이름으로 남았고,
어느새 중요하지 않은 장식품 하나로
치부되고 말았다.
그러다 오늘 문득,
벽에 걸린 그 시계와 눈이 마주쳤다.
멈춘 바늘들이 나를 향해 묻는 것만 같았다.
“필요할 땐 그렇게 찾더니,
이제는 내가 필요 없어진 거냐고.”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벽시계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왜 더 이상 일을 시키지 않는지,
왜 자신의 자리를 비워 두었는지를
묻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멈춘 시계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 침묵으로 끊임없이 두드리고 있었을지도.
사람들은 말한다.
멈춘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멈춤에 대한 위로일 뿐,
시계의 본심은 아닐 것이다.
시계는 돌고 싶었을 것이다.
흐름 속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정확함이라는 자존심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시계는 인류가 시간을 길들이며 만들어 낸
가장 정직한 얼굴이다.
약속을 가능하게 하고,
하루의 시작과 끝을 가늠하게 하며,
질서와 신뢰를 이어 온
작은 원형의 우주다.
그런 시계가 멈춰 있다는 것은
어쩌면 내 삶 어딘가에서도
시간의 감각이 느슨해졌다는
조용한 신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중요하지 않다 여겨
그 시계를 방치했다.
정확함을 요구하지 않아도 되는 삶,
대충 흘러가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시간을 맡길 대상을 하나둘 줄여온 결과였다.
벽시계는 그 침묵으로
“너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라고
묻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건전지를 사러 나섰다.
시계를 다시 돌리기 위함이었지만,
어쩌면 나 자신의 시간을
다시 움직이기 위한 걸음이었는지도 모른다.
건전지 하나로 생명을 되찾을
벽시계를 떠올리자
괜히 마음이 설렜다.
잠시 후, 건전지를 끼우면
초침은 다시 채 각 채 각 소리를 낼 것이다.
그 소리는 단순한 작동음이 아니라
더 이상 멈추지 말라는
조용한 격려처럼 들릴 것만 같다.
벽시계는 다시 제 자리에서
시간을 말해 줄 것이고,
나는 그 앞에서
시간을 흘려보내는 사람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서 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