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寒波)가 부른 두 얼굴

by 비움과 채움


우리 동네에 설비가게가 하나 있다.

주방용품, 욕실용품, 타일, 도기, 배관용품 등을 주로 판매하고 설비공사도 하는 곳이다.

오다가다 이 집 주인장과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는 사이다.

어느 날 샤워기를 사러 갔다가 “커피 한 잔 하고 가라”는그의 친절에 앉게 되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동향이고, 나이도 비슷하였다.

세상을 바라보는 결도 닮아 있어서,

그날 이후 우리는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그를 만났는데,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한파주의보 덕에 일감이 폭주하고 있단다.

가게 유리문에는

‘언 수도 녹여드립니다.’

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눈에 확 띄게, 망설일 틈도 없이.

그 글씨가 광이 나는 듯 보였다.


옆에서 안주인이 한마디 거든다.

“오늘 전화가 불나요. 불나”

갑작스레 들이닥친 한파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집들의

빗발치는 전화에

마나님이 덩달아 신바람이 나있다.

수돗물이 얼어 사용을 못하는 이들은

얼마나 황당하고 답답할까?


누군가는 울상일 테고,

누군가는 웃는다.

세상은 늘 그렇게 양면을 품고 돌아간다.

누군가의 불편이

다른 누군가의 생계가 되기도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장사가 안 된다며

담배 연기에 푸념을 실어 날리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담배 피울 시간조차 없다며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바쁜 손놀림,

살아 있는 표정.

그 모습이 괜히 고맙고 반가웠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 추위로 고생할 사람들을 떠올리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인간이란 게 참 묘하다.

만날 때마다 죽상이던 얼굴에

생기가 도는 모습을 보면

괜히 나까지 덩달아 안도하게 된다.


언 수도가 녹듯

사람들의 얼어붙은 마음도

함께 풀렸으면 좋겠다.

불편은 잠시 지나가고,

도움은 서로에게 남기를.


출근길의 한파 속에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추위가 하루빨리 풀리기를 바라면서도,

이 겨울이 드러낸

세상의 두 얼굴을

잠시 곱씹어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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