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경로석에 앉은 어르신 한 분이 이어폰을 꽂고 계신다.
귀가 어두우신지 볼륨이 제법 커서 노래가 또렷이 새어 나온다.
“고드름 고드름 수정 고드름
고드름 따다가 발을 엮어서
각시방 영창에 달아 놓아요”
순간, 시간이 멈추었다.
나는 그 노래 속으로 조용히 빨려 들어갔다.
언제 적에 들었던 노래였던가.
잊고 지내던 동요 하나가 전철 안에서 되살아났다.
어릴 적 겨울, 처마 밑에는 고드름이 줄줄이 매달려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길고 날카로운 놈을 고르는 일은
아이들에겐 하나의 의식과도 같았다.
보릿대를 꺾어 들고 고드름 윗부분에 입김을 불어댄다.
처음엔 아무 일도 없지만
한참을 불다 보면 얼음 속에 작은 구멍이 생긴다.
머리가 어질어질해질 때까지
숨을 불어넣던 그 시간들.
그 구멍에 줄을 꿰어 허리에 차면
그것은 더 이상 고드름이 아니었다.
얼음으로 만든 칼,
장군의 칼이 되어
아이들 세계에서 가장 강한 무기가 되었다.
“난 강감찬 장군이야.”
“난 김유신 장군!”
“난 이순신 장군이거든.”
강추위도 시린 손도 잊은 채
서로의 고드름 칼을 휘두르며 으스대곤 했다.
그 시절의 고드름은
유난히도 강했고,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얼음이 아니라
아이들의 상상력과 기개가 얼어붙은 칼이었을지도 모른다.
전철 안에서는 여전히 동요가 흐른다.
문득, 고드름을 노래한 동시 한 대목이 떠오른다.
“고드름 고드름 무슨 고드름
이른 아침 지게 지고 장터로 가는
박첨지 수염 끝에 수정 고드름
찬물로 고픈 배를 채우려다가
수염 끝에 대롱대롱 수정 고드름”
처마 밑에 매달린 뾰족한 얼음덩어리가
얼마나 맑고 고왔으면
‘수정’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동요가 되고, 시가 될 만큼
그 모습은 겨울의 보석이었을 것이다.
문득 오늘은 고개를 들어
이 집 저 집 처마를 바라보게 될 것 같다.
혹시 아직도
예스러움 같은 고드름 하나쯤
대롱대롱 매달려 있지 않을까 해서.
비록 손에 쥘 얼음칼은 사라졌어도
그 고드름 하나면 충분하다.
잠시 멈춰 서서
나의 어린 시절의 겨울과,
나의 옛 추억을
확실히 불러낼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