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더럽지 않다

by 비움과 채움

눈이 내린다.

습설이다. 손에 쥐면 금세 뭉쳐지는, 눈사람을 만들기엔 더없이 좋은 눈이다.

이런 날이면 몸이 먼저 기억을 꺼낸다.

생각할 틈도 없이 바깥으로 나가게 된다. 어릴 적 눈사람을 만들던 장면이 자연스레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미 마당 한쪽에서는 한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 눈사람을 만들어 놓고 있다.

눈썹을 붙이고, 코를 얹고, 입 모양을 다듬는다.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아빠는 진지하고 성실하다.

눈사람 하나에 온 마음을 쏟는 그 모습이 따뜻해 보인다.

그런데 그 곁에서 한 아이가 눈사람을 바라보고만 있다.

눈을 굴리며 신나게 노는 형아들을 따라가고 싶은 표정이 역력하다.

하지만 아이는 한 발짝도 다가서지 못한다. 엄마 곁에서, 입이 조금 튀어나온 채 서 있다.

“눈은 더러운 거야. 만지면 안 돼.”

엄마의 말은 단호했고, 아이의 눈은 그 순간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 반짝이던 눈은 망설임으로 가득 찼고,

하늘에서 내려온 흰 눈은 아이에게 ‘피해야 할 것’이 되어버렸다.

눈이 더럽다니.

그 말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눈은 순백의 상징이다.

눈은 설렘의 시작이고,

눈은 세상을 잠시 멈추게 하며 모든 풍경을 새롭게 장식하는 하늘의 선물이다.

눈이 내리면 아이들은 기억을 만든다.

차가운 손으로 눈을 뭉치고, 엉성한 눈사람을 만들고,

그날의 웃음과 추위를 함께 마음속에 담아둔다.

그 추억은 자라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힘든 날 문득 떠올라 마음을 데워주는, 아주 오래된 난로가 된다.

그런데 만약 어릴 적 눈을 만지지 못했다면,

눈사람을 만들어본 기억이 없다면,

그 사람의 겨울은 얼마나 밋밋해질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눈이 더럽다며 아이의 손을 막은 엄마는

과연 무엇을 만지며 살아왔을까.

눈사람 하나쯤 만들어본 적 없는 겨울을 보내온 건 아닐까.

눈은 깨끗하다.

눈은 아름답다.

눈은 아이들에게 추억을 선물하는 존재다.

흙처럼 털면 되고,

물처럼 씻으면 된다.

하지만 동심은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붙잡을 수 없다.

눈 내리는 날,

아이의 손에 눈을 쥐여주는 일은

세상을 믿어도 된다는 작은 허락인지도 모른다.

눈은 더럽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잊고 지낸 마음을

가장 깨끗하게 꺼내 보이게 하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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