찹쌀떡

by 비움과 채움

"찹쌀떡 사려~ 메밀묵~"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그 소리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귀에 닿는 순간, 시간은 느닷없이 방향을 틀었다.

분명 지금은 2026년의 겨울밤인데,

그 소리는 60~70년대 골목을 지나 그대로 흘러 들어왔다.


타임머신을 탄 걸까.


잠옷 차림에 외투 하나만 걸치고

현관문을 밀치듯 나섰다.

골목 어귀에 서 있는 사람은

개량 누비옷을 입은 젊은 찹쌀떡 장수였다.


어깨에는 나무로 된 목판 떡통을 메고 있었는데,

한눈에도 ‘옛것을 재현한 티'가 났다.

떡통 안에는 찹쌀떡의 온기를 지키기 위해

담요가 덮여 있었고,

메밀묵 대신 망개떡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모습을 보니 대학생으로 보였다.


“어쩌다 이걸 하게 됐어요?”


방학 동안 시작한 아르바이트란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주눅도 들었는데

어르신들께서 추억의 먹거리라면서

“추억을 불러줬다”, “참 잘했다”는 말을 건네주셔서

춥고, 소리 지르느라 힘들어도

이젠 이 일이 신나고 즐겁다고 했다.


아이디어는 할아버지로부터 얻었다고 했다.

할아버지도 대학 시절,

찹쌀떡을 팔아 학비를 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시절을 한 번 살아보고 싶어 시작했다는 말에 학생을 응원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오늘 밤 골목을 울리던

“찹쌀떡 사려~ 메밀묵~”

그 외침은 단순한 호객이 아니었다.

그건 기억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예전에는 야식이 흔하지 않았다.

출출한 겨울밤,

찹쌀떡 하나와 메밀묵 한 사발은

배를 채우는 음식이자

밤을 견디게 해주는 작은 위로였다.


쫀득한 찹쌀떡은 속을 따뜻하게 했고,

담백한 메밀묵은 부담 없이 배를 달래 주었다.

메밀묵은 서민들의 음식이었고,

때로는 굶주림을 대신해 주던 구황식품이었다.


늦은 밤 골목을 돌며 장사하던 찹쌀떡 장수들은 대부분 학비를 벌던 학생들이었고,

삶을 이어가던 청년들이었다.

“찹쌀떡 사려~ 메밀묵~”

그 외침은 생계였고, 희망이었다.


하지만 주거 형태가 바뀌고

밤이 조용해지면서

그 소리는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기억 속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되었다.


요즘 찹쌀떡은

시험에 ‘붙으라’는 의미의 선물이 되었고,

메밀묵은 도깨비가 좋아했다는 이야기만 남긴 채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오늘 밤 먹은 찹쌀떡의 맛은

놀랍도록 옛맛 그대로였다.

맛이 아니라

기억을 씹는 느낌 때문이었으리라.


“찹쌀떡 사려~ 메밀묵~.”


이제는 들리지 않는 소리.

하지만 겨울밤이면

한 번쯤 다시 떠올리고 싶은,

마음까지 데워주던

그 시절의 야식이다.


내일 밤에도

그 소리가 듣고 싶어진다.


"찹쌀떡 사려~ 메밀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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