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저 프린터를 들여온 지 6개월쯤 되었던것 같다.
많은 양을 출력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간편함과 신속함, 버튼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편리함이 마음에 들어 한 대 들여놓았다.
그동안 토너도 몇 번 갈고
용지도 한두 차례 사며
별다른 불편 없이 잘 지냈다.
프린터는 조용히 제 몫을 해냈고
나는 그 조용한 성실함에 은근한 애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린터 화면에 갑작스러운 에러 메시지가 떴다.
설명서를 펼쳐 들고
원인을 찾으려 이리저리 눌러봤지만
해결은 번번이 실패였다.
A/S 센터에 전화를 했더니
기기를 직접 들고 오란다.
그 말이 순간 꽤나 낯설게 들렸다.
이렇게 작은 문제 하나 해결하려
기계를 통째로 들고 움직여야 한다니.
결국 USB 하나 들고
동네 무인 카피센터를 찾았다.
안내문을 따라 몇 번 터치하자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속도는 빠르고
인쇄 품질은 흠잡을 데 없었다.
집에 있는 프린터를 다루듯
아무런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결제를 마치고
영수증을 들여다보는 순간
생각이 달라졌다.
가격이 생각보다 훨씬 착했다.
프린터 구입비, 토너 교체 비용,
용지 값과 감가상각까지 따져보니
자주 쓰지 않는다면
굳이 프린터를 소유할 이유가 있을까 싶어졌다.
필요할 때만
유료 카피점을 이용하는 편이
더 합리적인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유는 책임을 부르고
책임은 번거로움을 데려온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가 떠올랐다.
집으로 돌아와
고장 난 프린터를 바라보았다.
이 기계를 고쳐 계속 쓸 것인가,
아니면 조용히 한쪽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카피점을 찾을 것인가.
고민 끝에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비록 효율과 경제성에서는
카피점이 더 나아 보였지만
이 프린터는 이미
우리 집에 들어와 제 역할을 하려던 존재였다.
고장이라는 이유로
쉽게 생을 접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A/S 센터에 들러야겠다.
완벽하게 필요하지 않더라도
완전히 쓸모없어지기 전까지는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것이
사람과 물건을 대하는
내 방식이니까.
프린터와 카피점 사이에서
나는 효율과 애정 사이를
잠시 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