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매거진을 보다가 우연히 마주친 한 문장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부자 아빠는 되지 못할지언정, 건강한 아빠가 되겠다.”
그 문장은 누군가의 다짐이었지만, 읽는 내내 내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토씨 하나 흘리지 않고 끝까지 정독하게 된 이유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장이 되면 누구나 비슷한 꿈을 품을 것이다.
가족을 풍족하게 부양하고, 아내와 자식에게 존경받는 가장이 되고 싶다는 꿈.
그래서 사람들은 성공을 향해 쉼 없이 달린다.
몸이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오늘을 깎아 내일을 쌓아 올리면서 말이다.
나 역시 그랬다.
죽도록 일했다. 성공만이 답이라고 믿었었다.
그러다 탈이 났다.
과욕은 언제나 조용히 다가와, 한순간에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
병상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가, 창밖으로 보이는 남산을 멍하니 바라보던 날이 있었다.
'과연 저 산을 다시 걸어서 오를 수 있을까.
아니면 이제는 평생 바라보기만 하는 산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이 얼마나 모순투성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욕심이라는 그릇을 채우겠다고, 정작 내 몸이라는 그릇을 스스로 깨뜨려 버렸다는 사실을.
넘칠 수 없는 그릇에 끝없는 욕심을 억지로 쑤셔 넣으려 했던 어리석음이
결국 내 건강을 앗아갔다.
부자의 꿈도, 성공의 그림자도 그와 함께 멀어어져 버렸다.
입원실을 오가며 나를 간병하던 자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아이들은 과연 나를 어떤 아빠로 기억했을까.
부자 아빠였을까, 아니면 병든 아빠였을까.
그 답은 너무도 분명했다.
아이들은 성공한 아빠보다, 웃으며 손을 잡아줄 수 있는 건강한 아빠를 원했을 것이다.
그 사실이 가장 아팠다.
돈을 잃은 것보다, 명예를 내려놓은 것보다,
아이들에게 ‘아픈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이
나를 가장 깊이 후회하게 만들었다.
그때 아이들은 말했다.
“아빠, 부자 아니어도 돼. 그냥 건강했으면 좋겠어.”
그 말이 나를 살렸다.
그 후로 나는 욕심의 그릇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였다.
더 많이 가지기보다, 더 오래 함께하기 위해.
더 높이 오르기보다, 오늘을 무사히 걸어가기 위해
삶의 속도를 조절하는 법을 수련 중이다.
이제는 안다.
건강은 돈으로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한 자산이라는 것을.
돈은 다시 벌 수 있어도, 무너진 몸과 지나간 시간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부자 아빠는 되지 못할지언정,
아이와 함께 웃으며 걸을 수 있는 건강한 아빠가 되겠다는
그 욕심만큼은 지금도 차곡차곡 채우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값비싼 성공이며,
가장이 자식에게 남길 수 있는 최고의 유산임을
나는 뒤늦게, 그러나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