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잡는 해병

by 비움과 채움

지인의 형님께서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접했다.

얼마 전까지 암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기에, 임종을 지키러 간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분이 해병대 출신이자 월남전 참전용사였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오래전 먼저 세상을 떠난 둘째 형의 얼굴이 겹쳐 떠올랐다.

형 역시 해병대 출신이었고, 월남 파병을 다녀왔다.


형과 함께했던 시간 속에서 해병대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틈만 나면 ‘귀신 잡는 해병’의 이야기는 밤이 깊어지는 줄 모르게 이어졌다.

하도 반복해서 들은 탓에 형의 기수, 군번, 파견 부대, 당시의 상황까지도 외울 정도였다. 제대한 지 수십 년이 흘렀음에도 왜 그들은 여전히 군시절을 복기하고 또 복기하는 것일까. 그 이유가 늘 궁금했다.


해병대 출신의 정신세계는 극한의 훈련과 역사적 배경 속에서 형성된 독특한 멘탈리티를 지니고 있었다.

“안 되면 될 때까지”라는 표어로 상징되는 불굴의 의지, 기수를 중심으로 한 철저한 위계질서, 그리고 무엇보다 전우애. 조직을 우선시하고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문화는 그들을 강하게 만들었고, 사회로 돌아와서도 강한 생활력과 조직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대 후에도 해병 전우들은 기수를 예우하며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주는 끈끈한 연대 속에 살아간다고 한다.

애경사가 있을 때면 군복을 다시 꺼내 다려 칼같이 주름을 세우고, 바짓가랑이에 링을 차고, 군화를 반짝이도록 광을 내어 신은 채 각 모자를 쓰고 나서는 형의 모습은, 제대한 군인이 아니라 여전히 현역 같았다.


그러나 월남 파병 해병대원들의 삶은 그 정신력만으로 버텨내기엔 너무 가혹했다.

제대 후 수십 년이 지나서야 알 수 없는 병으로 쓰러지고, 암과 당뇨, 피부질환, 말초신경병, 그리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받는 모습을 주변에서 숱하게 보아왔다.

고엽제, 다이옥신이라는 단어는 그들의 몸속에 남아 조용히 생명을 잠식하고 있었다.


형이 술에 취해 고엽제 피해보상 촉구 시위에 다녀왔다며, 국가가 피해 군인들의 보상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며 푸념하던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나라의 부름에 응답해 전쟁터로 나갔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는 현실 앞에서 그들의 분노와 허탈함은 당연한 것이었으리라.


월남 파병 해병대원들은 전쟁의 가해자가 아니라 명백한 희생자였다.

국가의 명령에 따라 목숨을 걸고 파병되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그 후유증을 평생 짊어진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국가는 여전히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해 갈 수 없다.


귀신을 잡는다던 빨간 명찰과 빨간 모자로 상징되는 해병대원들은 하나둘씩 하늘의 별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전역 군인들이 이름조차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한다.

이들을 기억하는 일, 그리고 그 희생에 합당한 예우와 보상을 제공하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국가의 의무일 것이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군인들에 대한 보살핌은 차고 넘칠 만큼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전쟁은 국가가 결정했지만, 그 대가는 개인의 삶으로 치러졌다.

이제라도 국가는 늦지 않게 응답해야 한다. 별이 되어가는 전우들을 애도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살아 있는 전우들의 고통을 책임지는 것, 그것이 국가가 끝까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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