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봄의 문을 여는 날, 입춘(立春)이다.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자리한 스물네 절기 중 첫 번째 절기. 달력 위의 한 글자일 뿐이지만, 이 하루에는 겨울을 밀어내고 봄을 맞이하려는 사람들의 오래된 염원이 담겨 있다.
어릴 적 입춘이 오면 아버지는 유난히 이른 아침부터 움직이셨다.
먹을 갈고, 창호지를 곱게 펼쳐 큰 붓을 드셨다. 붓끝에서 또박또박 태어난 글씨는 ‘입춘대길(立春大吉)’과 ‘건양다경(建陽多慶)’이었다.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따스한 기운이 도니 경사가 많기를 바란다는 뜻이었다.
아버지는 그 글귀를 대문과 문설주에 붙이며 우리 형제들을 불러 세웠다.
“봄이 시작되면 크게 길할 것이요, 따뜻한 기운이 도니 경사가 많을 것이다.”
해마다 반복해 들었던 그 설명은 훈계라기보다 계절이 건네는 인사처럼 마음에 남아 있다.
입춘에는 또 하나의 풍속이 있었다 하셨다.
조상들은 입춘 전날 밤, 남몰래 선행을 베풀면 한 해 동안 액운을 면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하셨다. 이를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이라 불렀는데, 예컨대 밤중에 몰래 징검다리를 놓거나, 길을 곱게 다듬어 두거나, 거지들의 움막 앞에 밥 한 솥을 지어 두는 일들 등등.
아버지는 “보여주기 위한 선행은 공덕이 아니다”라며, 남이 모르게 하는 일이 더 귀하다고 하셨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그 가르침을 삶으로 옮긴 적은 없었다.
입춘방을 붙이던 풍경도, 그 의미를 곱씹던 시간도 점점 희미해졌다.
요즘은 대문에 입춘방을 붙이는 집을 찾아보기 어렵고, 간혹 붙어 있어도 1년 내내 그대로 남아 그 뜻이 바래고 만다.
입춘이 왔다고 해서 곧장 봄이 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입춘 뒤에 가장 매서운 한파가 찾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봄이 왔으되 봄 같지 않다는 이 말속에는, 계절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체념과 희망이 함께 담겨 있다.
문득 박형준 시인의 「입춘 단상」이 떠오른다.
‘바람 잔 날 무료히 양지쪽에 나앉아서
한 방울 두 방울 슬레이트 지붕을 타고 녹아내리는
추녀 물을 세어본다
한 방울 또 한 방울
천 원짜리 한 장 없이
용케도 겨울을 보냈구나
흘러가는 물방울에
봄이 잦아들었다’
시 속의 물방울처럼 봄은 요란하게 오지 않는다.
눈에 띄지 않게, 소리 없이 스며들며 겨울을 견뎌낸 삶 위에 조용히 내려앉는다.
입춘은 계절의 시작이자 마음을 돌아보는 날이다.
지난겨울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누군가를 위해 징검다리 하나 놓아줄 여유는 있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올해는 입춘 한파 없이, 꽃샘추위 없이 봄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마음보다 먼저,
내가 누군가의 봄이 되어줄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입춘이었으면 한다.
대문에 붙인 글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마음에 붙이는 작은 입춘방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