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에 갔다.
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달라진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분주하고, 상인들의 호객 소리가 골목을 가득 메우고, 반듯한 진열과 정가표가 붙은 마트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이곳에서는 물건보다 사람의 온기가 먼저 느껴진다. 재래시장 나들이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오래된 가게들이 자연스레 눈에 들어온다. 세월이 묻은 간판, 손때가 잔뜩 묻은 나무 문틀, 그리고 몇십 년은 족히 썼을 법한 조리도구들.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자체로 믿음이 가는 풍경이다. 옛 가겟집 특유의 정겨움은 재래시장을 단순한 장터가 아니라 기억이 쌓이는 장소로 만든다.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 곳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찜기 앞이었다. 고기·김치만두와 찐빵을 찌는 한쪽과, 갓 튀긴 찹쌀 꽈배기와 팥 도넛을 쌓아둔 다른 한쪽이 묘하게 잘 어울려 있었다. 찜기 뚜껑이 열릴 때마다 하얀 김이 훅 올라오고, 그 사이로 고소한 기름 냄새와 달콤한 설탕 향이 섞여 퍼졌다. 자연스레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어느새 가게 앞에는 길게 줄이 늘어섰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조차 싫지 않았다. 앞사람이 무엇을 고르는지 슬쩍 보며 “나도 저걸로 해야지” 마음속으로 정하고, 먹거리들이 하나씩 봉투에 담기는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무엇이든 빠르게 해결하려 드는 요즘, 이렇게 잠시 멈춰 서서 기다리는 시간은 오히려 작은 여유처럼 느껴졌다.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묘한 기대감과 설렘도 함께 커졌다.
드디어 노란 종이봉투에 꽈배기와 도넛이 담겼다. 마지막에 설탕을 ‘탁탁’ 털어 묻혀주는 손길에서는 장인의 리듬 같은 것이 느껴졌다. 봉투를 손에 들자 따뜻한 온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길을 걸으며 봉투를 들고 있는 그 순간, 괜히 마음이 든든해졌다. 이것이야말로 시장 간식을 사 들고 가는 소소한 행복일 것이다.
이런 먹거리들은 예나 지금이나 서민 간식의 상징이다. 큰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가격, 몇 개를 사도 넉넉하게 느껴지는 가성비, 그리고 배보다 마음을 먼저 채워주는 음식들. 옛 시절 “천 원에 몇 개” 하던 시장 인심은 형태만 바뀌었을 뿐, 그 느낌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비싼 디저트보다 이런 간식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다.
찹쌀 꽈배기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쫄깃한 식감과 달콤한 맛은 분명했지만, 기억 속의 옛날 꽈배기의 겉은 바삭하고 속은 더 투박하게 쫄깃했으며, 설탕도 지금처럼 고르게 묻어 있지 않았지만 깊은 맛이 났던 그 맛은 아니었다, ‘완성된 맛’이라기보다 ‘정겨운 맛’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입맛이 변한 것인지, 세월이 맛을 바꾼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아쉬움보다는 따뜻함이 더 컸다. 재래시장에서 옛 가게의 풍경을 보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봉투를 들고 걸으며 느낀 그 과정 자체가 이미 충분한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맛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그 맛을 둘러싼 기억과 정서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재래시장은 그렇게 오늘의 나에게 어제의 시간을 살짝 겹쳐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또, 재래시장을 찾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