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를 “조동아리”라 불렀다.
그만큼 말이 많았고, 또 그만큼 말이 재밌었다.
그는 늘 대화의 중심에 있었다. 누군가 이야기를 꺼내면 어느새 화제를 끌어안아 특유의 재치와 순발력으로 판을 뒤집었다. 같은 말을 두 번 하는 법이 없었고, 분위기에 꼭 맞는 농담을 즉석에서 빚어냈다. 세상사 풍자도, 시사 이슈도, 친구의 허물도 그의 입을 거치면 웃음으로 정제되었다. 우리는 그를 감초라 불렀고, 그는 모임의 공기였다.
“난 죽어도 물속을 보는 게 아니라 주둥이가 물 위로 뜰 거야.”
허풍 같았지만, 사실은 자부심이었다.
그에게 말은 존재감이었고, 생의 에너지였다. 우리는 그런 그를 좋아했다.
그런 그가 작년 가을 모임에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 약속을 누구보다 철저히 지키던 친구였다. 기어코 연락이 없었다. 전화를 걸자 수화기 너머로 낮게 가라앉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편이 후두암에 걸렸고 대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라고.
후두.
목소리를 내고 숨을 쉬는 길목이 아닌가.
그의 삶을 상징하던 기관에 암이 생겼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병문안을 갔을 때 그는 예전처럼 말을 쏟아내지 못했다. 일부 절제술로 기능을 최대한 살렸다지만, 목소리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평생 입에 물고 살던 담배가 원인이 되었을 수 있다는 말에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에는 인정과 후회, 그리고 늦은 깨달음이 담겨 있었다.
그 후 한동안 그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여섯 달 뒤, 그가 다시 모임에 나왔는데
왠지 낯설었다.
녀석은 여전히 그였지만, 더 이상 “조동아리”는 아니었다.
한마디를 꺼내기 전 숨을 고르는 모습이 조심스러웠고, 말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웃음은 남아 있었지만, 예전처럼 불꽃처럼 튀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조용히 우리 이야기를 잘 들어주 있었다.
녀석이 말했다. 퇴원 후 집에 돌아왔더니, 서예를 하는 아내가 큰 글씨로
연소필연(煙消筆煙), 소언다청(少言多聽)을 써 붙여 놓았다고,
담배 연기는 사라지고, 붓의 연기만 남기라,
그리고 말은 적게 하고, 많이 들으라는 뜻의 글을.
그 글 앞에서 문득 자신을 돌아보았다고 했다.
“죽어도 담배는 못 끊는다”던 오기,
“말 좀 줄이라”는 충고를 흘려듣던 고집.
그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졌었다고.
그는 담배를 끊었다.
그리고 말도 줄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조금 아쉬웠다.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이야기를 풀어내던 그의 모습, 그가 가장 그다웠던 순간들이 더는 없다는 것이.
녀석의 만담은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우리와 나눈 젊음이었고, 우정의 배경음이었었는데..
하지만 더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녀석이 더 고마웠다.
목을 아끼며 천천히 말하는 친구.
상대 말을 끝까지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친구.
웃음을 터뜨리기보다, 함께 미소 지어주는 친구.
녀석의 적어진 말수는 패배가 아니라 선택이었고, 녀석의 절제는 상실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우리는 모두 녀석에게 말해주었다.
“담배 잘 끊었다.”
“이제 ‘조동아리’는 은퇴다.”
“아프지 말고, 우리 오래 함께 가자.”
녀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줄었지만, 그 미소에는 예전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어쩌면 녀석은 이제야 진짜 만담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웃음으로 세상을 비틀던 사람이, 이제는 자신의 삶으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으니.
연소필연.
사라져야 할 것은 연기였다.
소언다청.
줄여야 할 것은 말이었다.
그리고 남겨야 할 것은
사람, 숨, 그리고 오늘도 함께 앉아 있다는 이 평범한 기적이었다.
우리는 그날,
녀석이 말을 적게 해서가 아니라
여전히 우리 곁에 앉아 있어 주고
웃을 수 있었음에 의미를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