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보낸 고로쇠 수액이 도착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려고 톡을 열었더니 친구가 보낸 글이 있다.
“경칩날 고로쇠 수액을 마시면 위장병과 신경통에 효험이 있다 하니
약물이라 여기고 잘 드시게나.”
해마다 경칩이면 잊지 않고 고로쇠를 보내주는 친구의 마음이 고마웠다.
투명한 병 속에 담긴 수액을 바라보니
마치 겨울을 통과해 막 올라온 봄의 숨결을 마시는 것만 같았다.
예로부터 고로쇠 수액은
‘뼈에 이로운 물’이라는 뜻의 골리수(骨利樹)라 불렸다고 한다.
겨울을 견디며 땅속 깊이 모아두었던 생명의 물이 봄이 오는 길목에서 조심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다.
낮과 밤의 기온 차가 10도 이상 벌어질 때
가장 잘 나온다는데, 그 또한 신기하다.
차가운 겨울과 따뜻한 봄이 서로 밀고 당기는
그 짧은 경계에서 비로소
나무는 몸속에 품었던 물을 세상 밖으로 내어놓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경칩이다.
경칩은 24 절기 가운데 세 번째 절기다.
놀랄 경(驚), 숨을 칩(蟄).
땅속에 숨어 겨울잠을 자던 것들이
봄기운에 놀라 깨어난다는 뜻이란다.
잠들어 있던 개구리가 눈을 뜨고
벌레들이 흙을 밀어 올리며 꿈틀거리고
들판에서는 보리 싹이 고개를 들어
올해 농사의 기운을 가늠하게 한다는 날.
옛사람들은 이때를 맞아 담을 쌓고
벽에 흙을 발랐다고 한다.
경칩에 하는 흙일은 탈이 없다고 믿었고, 흙벽을 바르면 빈대가 사라진다는 속설도 있었다고 한다.
어릴 적 기억도 문득 떠오른다.
몸에 좋다는 어른들의 말을 믿고
개구리나 도롱뇽의 알을 삼켰던 일.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그 또한 봄을 맞는 옛 풍습의 한 조각이었다.
오후가 되자 비가 제법 촉촉이 내리기 시작한다.
예로부터 경칩날 비가 오면
그해 농사가 잘 된다고 믿었다는데
비가 내려 대지가 촉촉해지면
씨앗들이 싹을 틔우기 좋은 환경이 되기 때문이었으리라.
창밖을 바라본다.
후줄근하게 내리는 이 봄비가
아직 잠들어 있는 꽃나무들의 어깨를
살며시 흔들어 깨우는 것 같다.
“이제 일어날 시간이다.”
비는 그렇게 속삭이며
대지를 두드리고 있는 듯하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들판과 산자락 어디에서든
봄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날 것 같다.
경칩날 내리는 이 비는
단순한 비가 아니다.
겨울의 마지막 문을 닫고
봄의 첫 문을 여는
조용하지만 확실한 신호다.
아마도 지금
땅속에서는
수많은 생명들이 동시에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켜고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