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약

by 비움과 채움

며칠 전 늘 복용하던 영양제가 떨어져 주문을 했다.

수입품이라며 며칠이 걸린다고 했다.

그렇게 기다리던 영양제가 마침내 도착했다.


포장을 뜯고 약통을 열어 넣으려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약이 이렇게 많았던가?’


마음을 먹고 약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감기약, 지사제, 해열제, 아스피린…

가정상비약을 종류별로 나누어 놓다 보니

알 수 없는 약들이 꽤 많이 눈에 띄었다.


대부분은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이었다.

몸이 불편해 병원을 찾았다가 처방받았던 약들.

며칠 먹다 괜찮아지면 더 이상 복용하지 않고

“혹시 나중에 필요할지 모르지” 하며

그대로 약통 속에 남겨두었던 것들이다.


하나둘 꺼내 분류하다 보니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약통 옆에는 크고 작은 약병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언제 샀는지, 왜 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영양제들이다.

몸에 좋다 해서 사두었거나,

지인에게 선물로 받았던 것들일 것이다.


유통기한을 확인해 보니

이미 날짜가 지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모아 놓고 보니 한 보따리였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나?


문득 궁금해져 ‘남은 약 버리는 법’을 검색해 보았다.

그때 처음 알게 된 단어가 있었다.


‘폐의약품.’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약은 일반 쓰레기나 하수구에 버리면 안 된다고 한다.

약국이나 보건소, 주민센터에 있는 전용 수거함에 따로 배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방법도 자세히 안내되어 있었다.


알약과 캡슐은 포장지 그대로 두거나

한 봉투에 모아 밀봉하고,

가루약은 약봉지째 묶어 두고,

물약과 시럽은 하나의 병에 모아 마개를 잘 닫는다.


연고나 안약, 흡입제는 용기 그대로. 건강기능식품은 일반 쓰레기로.


시키는 대로 분류를 마쳤다.


알약 봉투, 가루약 봉투,

물약 병 들,

연고와 안약 몇 개.


조용히 늘어선 약들을 바라보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금

약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


몸이 조금만 불편해도 병원을 찾고

약을 처방받는다.

몸에 좋다는 말 한마디에

영양제도 쉽게 사 모은다.


하지만 정작 그 약들은

끝까지 먹지 못하고

약통 속에 남겨진다.


건강을 위해 산 약들이

어느새 방치된 채 쌓여가는 모습은

어쩐지 우리의 삶과도 닮아 있었다.


월요일 출근길,

이 약들을 들고 동네 약국에 들를 생각이다.


조용히 수거함에 넣고 나오면서

아마 이런 생각을 다시 할 것 같다.


약이 넘치는 세상에서

정작 필요한 것은


어쩌면 약이 아니라

건강한 삶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문득

예전에 보았던 문구 하나가 떠오른다.


“약을 오남용 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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