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북한산에 올랐다.
전망이 탁 트인 바위 위에 앉아 준비해 간 차를 꺼내 마시며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 젊은 친구 하나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선생님, 한 말씀 여쭤봐도 될까요?”
대학원생인데 논문을 준비 중이라며
등산객들을 직접 만나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고 했다.
예의 바르게 협조를 부탁하는 모습이 싫지 않아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논문 주제는 꽤 근사했다.
“현대인의 등산 동기 분석과
심리적 안녕감(Psychological Well-being)의 상관관계 연구.”
산을 왜 오르는가.
그리고 그 행위가 사람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인문학과 심리학, 사회학이 함께 얽힐 수 있는
꽤 매력적인 연구 주제처럼 들렸다.
설문지는 A4 용지 세 장.
생각보다 묵직했다.
한 달에 몇 번 산에 오르는지,
주로 누구와 함께 등산하는지,
어떤 난이도의 산을 선호하는지.
페이지를 넘기며 비교적 쉽게 답을 적어 내려갔다.
그런데 한 문항에서 손이 멈췄다.
“당신에게 산은 어떤 의미입니까?”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십수 년 동안
수많은 산을 올랐고
수없이 정상에 서 보았다.
그런데 정작
나에게 산이 어떤 의미인지
한 번도 명확하게 정의해 본 적이 없었다.
한참을 미적거리다가
그냥 떠오르는 대로 적었다.
“산은 내게 쉼이자 도약이다.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는 휴식처이면서
정상에 올라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성장판이다.”
적어 놓고 보니
그럴듯했다.
학생은 연신 고맙다며
볼펜 하나를 선물로 건넸다.
넙죽 인사를 하고는
또 다른 등산객에게 달려갔다.
그 뒷모습을 보는데
괜히 마음이 걸렸다.
그 학생에게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응답이
논문을 완성하기 위한 소중한 데이터일 텐데
나는 정확한 내 생각이라기보다
그저 순간 떠오른 말을 적어 주었으니 말이다.
산행을 계속하면서
자꾸 그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산은 내게 무엇인가.
쉼인가.
도전인가.
습관인가.
도피인가.
정답이 있는 질문 같지 않았다.
능선을 따라 걸으면서도
나는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나는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던가.
산에 빠진 사람이었던가.
아니면 산에 미친 사람이었던가.
산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이 질문에 선뜻 답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산은 너무 오래
내 삶 속에 들어와 있어서인지
이제는 하나의 의미로
묶어 설명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 있었다.
친구이기도 하고,
쉼터이기도 하고,
도전이기도 하고,
습관이기도 했다.
어쩌면 산은
정의하는 순간
그 의미가 작아지는 지도 모른다.
하산길에 들어서서도
나는 여전히 그 질문을 붙잡고 있었다.
산은 내게 무엇인가.
아직도
명확한 답은 찾지 못했다.
다음 산에 오르면
그 답을 찾게 될까.
아니면
평생 산을 다녀도
끝내 알지 못할까.
그래도 괜찮다.
답을 찾지 못해도
나는 또 산에 갈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산이 내게 가진
가장 솔직한 의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