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과 말아톤

by 비움과 채움

몇 해 전 여행지에서 한 분을 만난 적이 있다.

그분은 여행지에서도 새벽이면 어김없이 달리는 사람이었다.

해가 뜨기도 전, 숙소 문을 나서 약 40분 정도를 달리고 돌아오곤 했다.


처음엔 단순히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보다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는 마라톤에 깊이 빠진 사람이었다.


60대 후반의 나이였지만

50대부터 마라톤에 입문해 국내외 수많은 대회에 참가했고

풀코스 완주도 여러 번, 하프코스는 셀 수 없을 만큼 달렸다고 했다.


국내 시니어 경기에서도 몇 차례 우승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다녀온 마라톤 대회를 손가락으로 하나씩 세며

사막 마라톤, 만리장성 마라톤, 알프스 산악 마라톤 등을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할 때면 얼굴이 환하게 피어났다.

마치 꽃이 피듯이 말이다.


그러다 문득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년에는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 신청을 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요즘 더 열심히 훈련하고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잔뜩 들떠 있었다.


마라톤은 42.195km라는 긴 거리를 달리는 스포츠다.

신체적·정신적으로 큰 성취감을 주지만

철저한 준비 없이는 치명적인 위험이 따를 수도 있는 운동이다.


나는 대학원 시절

마라톤의 ‘실과 허’에 대한 리포트를 작성한 적이 있었다.


먼저 마라톤의 ‘실’, 즉 장점은 분명하다.


대표적인 것이 심혈관 건강이다.

지속적인 달리기는 심폐 기능을 강화하고

혈관 건강을 개선하며 혈압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체지방 연소 효과가 커

비만 예방에도 탁월한 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마라톤은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큰 장점을 가진다.

장거리 달리기는 끈기와 인내심을 요구한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 완주하는 경험은

큰 성취감과 자신감을 준다.


또한 지속적인 달리기는

뇌로 가는 혈류량을 증가시켜

인지 기능 유지와 뇌세포 생성에도 도움을 준다는 연구도 있다.


무엇보다 마라톤의 매력은

함께 달리는 문화에 있다.


러닝 크루와 함께 달리고

수많은 사람들과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며

완주선에 들어오는 순간의 기쁨은

마라톤을 경험한 사람들이 다시 그 길로 돌아오게 만든다.


그러나 마라톤에는 분명 ‘허’도 존재한다.


가장 큰 위험은 부상이다.

마라톤은 장시간 달리는 운동이기 때문에

무릎, 발목, 허리 등 관절에 반복적인 충격이 쌓인다.


특히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훈련하거나

경기에 참가할 경우 부상 위험이 크게 증가한다.


또한 기록경기라는 특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지나친 훈련에 자신을 몰아넣기도 한다.


42.195km라는 거리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거리다.


충분한 수분 섭취와 페이스 조절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탈진이나 근육 경련, 심한 경우 생명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마라톤에는 또 하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원래 마라톤의 유래는 약 38km 정도였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 마라톤 전투에서 승전 소식을 전하기 위해

한 병사가 아테네까지 달려가 승리를 알리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그때 나는 웃으며 그분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마라톤의 답은 38킬로미터를 달려온 로마 병사가

승리를 전하고 죽었다는 사실 아닙니까?”


농담처럼 건넨 말이었다.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말속에는 묘한 아이러니가 담겨 있었던 것 같다.


얼마 전

그분의 비보를 전해 들었다.


작년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

출국을 앞두고 있던 전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건강을 누구보다 자랑하던 분이었다.


지병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큰 대회를 앞두고

무리한 훈련을 했던 것일까.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들은 소식이라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여행지에서 환하게 웃으며 마라톤 이야기를 하던

그분의 얼굴이 떠올랐다.


마라톤은 분명

건강한 삶을 위한 위대한 도전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도전이 진정한 ‘실’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을 정확히 이해하고

철저한 준비와 절제가 함께해야 한다.


달리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끝까지 건강하게 달릴 수 있는 삶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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