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시골에서 자랐다.
이른 봄날 아침이면, 아직 공기가 차갑게 남아 있는 들판 위로
종달새 한 마리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곤 했다.
작은 몸으로 끝없이 올라가더니,
이내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은 곳에서 맑고 고운 소리를 흘려보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언제 내려오나 목이 빠지게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어른들은 말했다.
종달새 노래를 따라 부르면 친구 하자고 내려온다고.
그래서 나는 두 손을 입에 모으고
하늘을 향해 외쳤다.
“비비 배배, 비비 배배.”
어린 마음에는
정말로 그 새가 내 목소리를 듣고 내려올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하늘과 이야기를 나누던 시절이 있었다.
세월이 흐르고,
어느 날 신문 한 구석에서 종달새 이야기를 다시 만났다.
이젠 그 종달새가
더 이상 우리 곁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소식이었다.
텃새가 아니라 철새가 되어
그 울음소리를 듣기 어려워졌다는 기사였다.
왜 그런 것일까?
풀밭에 둥지를 틀던 그 작은 생명은
농약에 잠식된 들판에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었고,
결국 종족을 이어갈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났다고 한다.
짧은 기사였지만
가슴 한쪽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때 문득
학창 시절 외웠던 시조 한 수가 떠올랐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그 시조 속의 ‘노고지리’가 바로 종달새라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었다.
‘노골노골 지리지리’ 운다 하여 붙여진 이름.
그 울음은 단순한 새소리가 아니라
하루를 여는 신호였고
농부들이 밭을 갈기 시작하는 시간의 기준이었다.
종달새는 그렇게
농촌의 봄을 깨우는 존재였다.
그런데 이제
그 봄의 시작을 알리던 소리가
우리 곁에서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하늘에서 “비비 배배” 울며
오르락내리락하던 그 모습도,
들판 위를 맴돌던 그 날갯짓도
이젠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고 있다.
어릴 적 따라 부르던 동요가 있다.
“하늘에서 굽어보면 보리밭이 좋아 보여
종달새가 쏜살같이 내려옵니다
비비 배배 거리며 오르락내리락
오르락내리락하다 하루 해가 집니다.”
그 노래 속에는
자연과 사람이 함께 숨 쉬던 시간이 담겨 있었다.
만약 종달새가 없었다면
이토록 따뜻하고 맑은 노래가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을까.
이제는 그저
기억 속에서만 들리는 소리가 되어버린
“비비 배배”
가끔은 문득
그 시절의 하늘이 그리워진다.
언젠가
이른 봄날, 다시 고향을 찾게 된다면
맑은 하늘 저 높이에서
종달새 한 마리가 힘차게 날아오르며
“비비 배배, 비비 배배”
그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그날이 온다면
나는 다시 어린아이처럼
하늘을 향해 두 손 모아 입에 대고
비비 배배 비비 배배
종다리를 부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