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길어졌다

by 비움과 채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그 하루가

달력 위에서는 그저 하나의 절기일 뿐이지만

몸으로 느끼는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분명했다.


오늘, 문득 시계를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아, 날이 길어졌구나.”


예전 같으면 이 시간이면

어둠이 슬그머니 내려앉을 즈음인데

창밖은 아직도 한낮처럼 환하다.

어쩌면 하루 사이에

시간이 한 뼘쯤 자란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어릴 적 어른들이 들려주시던

춘분의 이야기들이 불쑥 떠올랐다.


춘분이 지나면

쑥을 캐고, 냉이를 뜯고, 달래를 무쳐 먹으며

겨울 동안 움츠렸던 몸을 깨운다고 했다.


“이때 밭을 갈지 않으면

한 해 내내 배고프단다”

어른들 말슴이셨다.


그 말은 단순한 농사 이야기가 아니라

삶을 준비하는 시간에 대한

묵직한 가르침이었는지도 모른다.


비가 내리면 병이 적어 풍년이 들고,

동쪽 하늘에 푸른 구름이 뜨면

보리가 잘 된다고 믿었던 그 시절의 농심.


오늘 하늘은 맑기만 하다.

구름 한 점 없다.

어느 농부는 이 하늘을 바라보며

비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는 이미 씨 뿌릴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그렇게 계절은 고장 없이

때가 되면 길어지고,

때가 되면 짧아진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 변화를 분명히 느끼고 있다.


조금 더 머무는 빛,

조금 더 길어진 하루.

낮이 자라고 있다.


마치 키다리 아저씨처럼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앞으로 한동안은

그 길어진 낮과 함께 걷게 되겠지.


겨울의 그림자를 밀어내며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봄은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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