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을 방문한 손님에게 냉장고에서 사과 음료 하나를 꺼내 건넸다.
그는 손사래를 치며 정중히 거절했다.
사과에 알레르기가 있어 어릴 때부터 사과를 먹지 못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사과 캔주스를 마셨다가
곧바로 병원에 실려 간 적이 있다고 했다.
음료에 소량 첨가된 사과 성분에도 몸이 즉각 반응한다며
자신의 체질이 싫다고 조용히 말했다.
꽃가루 알레르기로 봄철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많이 보왔지만
사과 알레르기를 가진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마시고 먹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알레르기는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해롭지 않은 외부 물질에도 과도하게 반응하여
염증을 일으키는 현상이라고 한다.
꽃가루, 집먼지진드기, 동물의 털, 음식, 곰팡이…
원인은 다양하고, 반응 또한 제각각이라고.
재채기와 콧물 같은 가벼운 증상에서부터
피부 발진, 두드러기, 호흡곤란,
심하면 생명을 위협하는 아나필락시스까지 이어지기도 한다고 한다.
친구 중에는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는데,
자식들도 같은 증상을 겪고 있다 했다.
알레르기조차 유전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몸이라는 것이 개인의 것이면서도
또 부모로부터 이어진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봄이 오면 사람들은 꽃을 기다린다.
그러나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이들에게
봄은 축제가 아니라 견뎌야 할 계절일지도 모른다.
꽃이 피는 풍경마저
마스크와 약으로 버텨야 하는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의 삶은 늘 조심과 경계 속에 있을 것이다.
음식을 고를 때도, 여행을 갈 때도,
누군가 건네는 작은 음료 하나에도
먼저 성분을 확인해야 하는.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매번 확인과 긴장의 연속이라니?
손님께서 냉수를 마시며 한 마디 한다.
“알레르기가 없는 체질로 태어난 건 축복이에요.”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사과를 먹고
봄꽃을 가까이에서 보고
먼지 많은 길을 걸어도 큰 걱정이 없다.
그 평범함이
사실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게 해 주신 부모님,
알레르기 없이 숨 쉬고
먹고 마시며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신
그 보이지 않는 유전의 선물에
문득 고개가 숙여졌다.
우리는 늘 더 많은 것을 바라며 살아가지만
어쩌면 가장 큰 축복은
아무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몸인지도 모른다.
퇴근 후 사과 한 입을 베어 물며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 평범함에
조용히 감사했다.
그리고 알레르기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조심스러운 하루가
조금은 덜 힘들기를 바라본다.